간판을 정의하면 기관이나 영업소가 이름이나 판매 상품, 업종을 써서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이게 붙이는 표지물로, 요즘 건물을 다 짓고 나면 우선하는 일이 간판 붙이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건물의 외장이 선전용 간판으로 철갑을 두른듯해 간판과 건물의 관계가 마치 악어와 악어새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 건축물을 설계한 건축가의 입장에서 보면 준공하자마자 빨리 사진을 찍어 둬야 겨우 알량한 건물의 모습을 간직 할 수 있다. 심한 경우에는 유리창 문마다 써 붙이는 썬팅으로 사진을 보기가 민망할 정도이다.

그렇다고 간판이 무조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건물과 비래해서 적당한 크기와 모양으로 설치돼 조화를 이뤄야 한다. 한 때 홍콩의 야경사진에 나오는 휘황찬란한 네온 간판이 부럽기도 했으며, 이는 곧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간판은 아마 미국 `로스엔젤래스` 주변 산 위턱에 늘어놓은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바라보는 허리우드 사인일 것이다. 1923년 `허리우드 랜드`라는 이름으로 부동산회사 광고를 위해 처음 세워져, 이후로 글자 하나하나마다 훼손과 복구를 반복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뉴욕 타임스퀘어(Times Square) 전광판 광고를 어느 회사가 하느냐가 세계 경제의 흐름을 주도하는 상징적인 광고판으로 매년 39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오며, 매일 약 3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교차로라고 한다. 그래서 어느 해인가는 우리나라 기업이 이곳에 간판을 설치한 모습을 보고 온 국민이 자긍심을 느끼기도 했다.

도심 큰 도로가의 건물 외벽에 무분별한 간판이 층마다, 창마다 설치해있는 모습을 보기에는 너무 불편하다. 더욱이 밤거리를 살펴보면, 병원의 녹색 십자가와 교회의 빨간 십자가 유난히 눈에 많이 띤다. 1990년대 이후 우리의 간판 문화는 양적인 팽창만을 해왔기에, 형태나 디자인 등 컨텐츠에 대한 개발이 좀 미흡하다. 물론 광고규제법에 따라 설치하겠지만, 이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설치하는 간판은 보다 엄한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 일정 규모까지는 자유롭게 허용하지만, 과잉 설치한 건물주에겐 세금을 부과해 시선을 괴롭히는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또한 매번 선거철이 되면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가로수와 가로등을 이용한 플랜카트의 무분별한 설치도 자제돼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간판은 `거리의 색상`인 동시에 `도시의 조명`이다. 서대전 네거리의 옥상간판 효과는 전국적으로 높은 가치를 자랑하는 장소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도심의 많은 건축물에 잘 어울리는 간판이 반듯하게 세워지길 바란다. 건물과 간판은 그 사회의 문화적 수준과 경제력을 동반 성장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동력으로 항상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으므로 이에 걸 맞는 모습으로 발전하길 기대해 본다.

유병우 <(주)씨엔유건축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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