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선거 때만 되면 각계각층의 요구가 봇물 치듯 쏟아져 나온다. 후보자들은 다들 그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한다. 소위 캠프에서는 선심성 공약을 나서서 발표한다. 공약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하고 구색이 맞지 않으면 끼워 넣기로 채운다. 이번 대선에도 어김없이 구태가 드러나고 있다. 농업정책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지키지도 않을 선심성 농정공약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길 바란다. 이것도 적폐 중의 하나 아닌가? 통치철학과 비전을 세우고 거기에 걸 맞는 농정공약을 제시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당시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 시장논리에 방치하지 않겠다. 농어업인의 땀이 헛되지 않도록 희망 농어촌을 만들자`고 하였다. 과연 이행하였는가? 농가소득은 도시근로자가구 소득의 64%에 불과하고, 농림예산의 연평균 증가율은 1.73%로 참여정부 5.02%에 한참 못 미쳤다. 또 국가 전체예산에서 농림예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7년 6.5%에서 2016년 5.0%로 계속 감소했다. 쌀값은 폭락을 거듭하여, 밥 한 공기 쌀값이 190원도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농업은 국민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안전한 식량을 공급하는 생명산업이고, 그 토대 위에 경제활동과 문화·여가활동 등이 이루어진다는 정책신념과 비전을 세워야 한다. 또 농정공약의 3가지 키워드인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농업, 농가소득의 안정, 농정 거버넌스 구축으로 큰 방향을 잡아야 한다.

첫째, 농업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24%로 OECD 국가 중 최하위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의 76%는 수입농산물이라는 의미이다. 세계적으로 식량생산은 지역 간에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고 식량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2008년에 겪었던 애그플레이션은 언제든지 발생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애그플레이션은 농업과 인플레이션의 합성어이다. 농산물가격이 상승하여 소비자물가와 생산자물가를 상승시키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처럼 곡물의 76%를 수입농산물에 의존하고 있는 나라는 해외 농산물시장의 영향을 직접 받게 되어 있어 애그플레이션에 매우 취약하다. 돈이 있어도 사먹기 어려운 상태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식량안보와 식량주권의 관점에서 식량자급력을 향상시켜 국민들에게 식량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 식량생산의 기반인 농지 보존을 위한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국민의 기본식량을 자급할 수 있는 정책의 이행계획을 국가단위와 지역단위로 수립해야 한다. 또 국민의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한 농축산물 생산정책이 필요하다. 농약잔류와 방사능 오염식품 금지, GMO 완전표시제, 친환경농축산업이 육성 등이 그것이다.

둘째, 농가소득을 안정시켜야 한다. 농업·농촌은 식량공급 외에 공기정화와 산소공급, 농촌경관과 생태보전, 전통문화의 계승 같은 공익적·다원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경제적 가치가 약 82조원으로 추산되고 있으나 실제 지불되지는 않고 있다. 국민이 농촌에서 체험·견학하고 휴양할 수 있는 것은 농업·농촌이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품목별로 지급되고 있는 직접지불제를 공익적 기능 수행에 대한 정당한 보상으로 바꾸어 농가의 기본소득을 보장해야 한다. 농가소득이 안정되어야 농업·농촌이 유지될 수 있다.

셋째, 농업인단체가 참여하여 정부와 함께 농업정책을 수립 추진하는 대통령 직속의 농정 거버넌스 기구의 설치이다.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정책을 만들어 농업인에게 선택하라는 하향식 정책추진 방식은 효과성과 형평성을 얻기 어렵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농업문제의 답은 현장에 있고 농정의 주체는 농업인이다. 대통령이 말로만이 아닌, `직접` 챙기는 농정 거버넌스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농업인으로부터 직접 제안을 받고 농정을 수립 추진하는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다. 농업인의 욕구를 반영한 실질적인 농정이 추진되어 정책의 효과성, 효율성, 형평성을 달성할 수 있다.

김호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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