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미 대전시립교향악단 기획팀 차장

유명인사들의 성공담에 등장하는 유년시절에는 반드시 한없이 인자하거나 엄했던 선생님이 등장한다. 어려운 가정환경에 모든 걸 포기하려던 그 순간 어떤 계기나 사건이 반전을 만들어 준다. 다시 말해 선생님이 했던 별말 아닌 이야기나 행동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다행스럽게 학교생활이 재미있다고 한다. 입학식에서 인상 좋은 담임선생님이 동요 부르기를 좋아한다는 말에 잠시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시험기간보다 소풍이나 학예회가 바쁘고 할 일이 많았던 나를 믿고 지켜봐 주시는 선생님이 계셨다. 행사가 끝나고 나면 만족감과 아쉬움에 다음 행사를 기다리기도 했다. 뭔가를 기획해서 추진하는 것이 어린나이에도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수업이 끝나면 책상을 뒤로 밀고 바닥에 둘러앉아 선생님의 기타반주에 노래하고, 가끔은 카세트테이프로 좋은 곡들을 들려주셨던 선생님은 음악이 있는 삶이 얼마나 풍요로운지를 제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어느 날 관악밴드부가 유명한 우리 학교에 현악부가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던 교장선생님이 현악부 창단을 추진하셨다. 평소 기타를 잘 친다는 이유로 담임선생님이 현악부를 맡게 되셨고, 키가 크다는 이유로 나는 현악부의 더블베이스 주자가 되어 있었다. 피아노 학원을 다녀본 것이 전부인 나에게 더블베이스는 크고, 어려운 악기였다. 그때부터 오케스트라 연주가 있다고 하면 선생님은 현악부 아이들을 무조건 데려가셨다. 그리고 창단한 그해 방학도 없이 연습하며 지역 음악경연대회를 나가서 상을 받아오는 큰 성과를 거뒀다.

졸업 후 전공을 하지 않아 악기는 접었지만 그 감성만은 살아 숨쉬고 있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가 하는 일은 음악과 관련이 있었고, 지금은 그 안으로 들어와 교향악단의 기획업무를 하고 있다. 어린 시절 무대 위에 있던 동경의 연주자를 지금은 직장에서 만나기도하고, 나에게 음악이 늘 옆에 있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선생님이 관객으로 찾아오기도 하신다.

이제는 학부모가 됐지만 공연장에 오시는 은사님은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시면 대견해 하신다. 나에게 그냥 직장이었던 대전시향이 그 순간 어린 시절 내 우상들이 서 있던 곳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며 그때의 그 감성으로 이 직업을 선택한 것에 대해 감사한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강은선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