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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얽매이면 '삶의 원리' 훼손···우리의 눈 미래 향해야"

2017-03-19기사 편집 2017-03-19 17:15:53

대전일보 > 사람들 > 충청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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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 오디세이] 복거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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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와 사회평론가로 잘 알려진 복거일 선생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이자 석학이다. 선생은 삶과 역사를 통찰하는 소설로부터 깊고 날카로운 사회 평론에 이르기까지 정치와 경제·외교·안보 분야 등을 넘나들며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해왔다. 충남 아산 출신인 복 선생은 차기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으로 '대한민국의 구성 원리에 따른 통합'을 강조하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역설했다. 충청인들을 향해선 "모두 균형 잡힌 감각을 지니셔서 쏠림 현상이 좀 적다"며 적극적인 역할을 당부했다.



대담=송신용 서울지사장



- 세상이 어지럽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는데 국민들이 어떤 자세를 갖는 게 필요하다고 보나?

"혼란스럽죠. 촛불 시위와 태극기 집회를 보니 탄핵 인용과 반대 세력이 대략 반 반쯤 되는 것 같더라. 혼란이 커진 데는 소추 과정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법의 기능은 분쟁 해결이다. 법에 따라 처리하고 새 출발하면 되는데 공정하지 못했던 부분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따라야 한다. 헌재의 심판 과정은 문제적이었지 판결엔 승복해야 한다. 우리의 눈이 향할 곳은 미래다. 과거에 얽매이면 삶의 원리를 훼손한다. 과거에 심리적 자산을 쏟아붓다 보면 개인이나 사회 전체로 보나 소모적이다."

- 촛불과 태극기 물결 속에서 살았다. 의미가 무어라고 생각하나.

"폭력이 없었다. 나는 태극기 집회가 더 질서정연했다고 생각한다. 60-70대 노인들이 앉지도 않은 채 서서 태극기를 흔들며 질서 있게 의사 표시를 했다. 나라를 향한 순수하고 강렬한 에너지가 광장으로 이끌었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원숙해졌다. 특히 경찰을 칭찬하고 싶다. 공권력도 원숙했다. 이렇게 민주주의가 성숙해가는 게 아니겠나."

- 조기 대선 국면이다. 차기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시대정신은?

"후보들이 통합이나 분열의 치유를 내세우는 건 좋다. 중요한 건 통합의 방식이다. 대한민국의 구성 원리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따라 통합을 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나는 좌파였는데 정책은 우파로 돌아가더라'는 거다. 요즘 안희정 충남지사가 그런 말을 하더라. 대연정을 주장하고, 이념보다 민생을 앞세우는 건 지사를 해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배운 거다. 우파 쪽에서 위장 운운하기도 하는 데 난 믿어도 된다고 본다. 또 충남지사니까 호감이 더 간다. 팔도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지 않나."

- 외교·안보 상황이 구한말을 연상시킨다. 우선 진단을 한다면.

"세월이 흘러도 지정학적 조건은 안 바뀐다. 우리는 반도국가인 만큼 둘레에 강대한 세력이 나타나면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중국 사람은 지금도 6·25 전쟁을 'Korean War'(한국전쟁)라고 안 한다.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이라고 부른다. 안 잊는다, 그 사람들은. 우리는 모두 잊었다. 구한말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이란 걸 국민들이 깨달아야 한다."

- 사드 배치 문제가 뜨거운 현안이다.

"원래 중국이 하나의 패로 쓰려고 가볍게 던진 거다. 중국이 남중국해 문제로 어려운 지경에 몰리다 보니 돌파구가 절실했고, 사드 배치 반대를 들고 나왔다. 그런데, 한국에서 동조하고 나섰단 말이지. 과정도 창피하다. 레이더가 인체에 해롭다는 이야기가 퍼졌고. 더구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반대한다고 나오니 강력한 패가 된 거지. 승산이 있다고 판단해 밀어 붙이는 거다. 롯데가 당하고 다른 기업들이 당하고 관광객이 줄어드는 거 문재인 후보가 90퍼센트 책임져야 한다."

- 지금이라도 방법이 없을까?

"사드는 방어적인 무기다. 북한의 핵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어야 한다. 그러면 끝나는 거였다. 북핵이 없었으면 사드도 없었다, 이렇게 밀어붙여야 했다. 자기네 영토를 감시한다고 하는 데 사드 아니라도 서로 간에 들여다볼 건 이미 다 들여다보고 있다."

-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어야 하나?

"공산주의는 끝까지 밟는다. 거긴 도덕이라는 게 없다. 지도자가 제시하는 사회 목표에 도움이 되면 그게 도덕적인 행동이고 어긋나면 부도덕한 행동이 된다. 도덕을 역이용해야 한다.'맹자' 첫 장인 '하필왈리장'(何必曰利章) 에 이런 말이 나온다. 양혜왕상이 맹자에게 이로운 일에 대해 묻자 맹자가 인의만이 있을 뿐이라고 대답하는 내용이다. 중국에게 나라 사이에 지켜야 할 도덕을 지켜야 한다고 따져어야 한다. "

- 글로벌 스탠더드 하고도 관련이 있겠다.

"북한 인권이 그런 거 아니겠나. 중국이 북한을 돕는 건 인권과 같은 보편적인 가치를 팽개치는 거라고 계속 말해야 한다. 중국이 제일 아파하는 부분이다."



복거일 선생은 외교에 있어 지도자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일본 기시 노부스케 수상 사례를 들었다. 기시 수상이 일본 국익을 위해 미일안보조약을 체결한 뒤 좌파의 반대 시위가 잇따르자 과감히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외무부 장관 다섯 명이 사표를 낸다고 각오하고 달려들면 사드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최근 '한반도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를 펴냈다.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

"9년 만의 증보판인데 한영 병렬판이다. 우리가 중국을 가장 잘 안다. 미국이나 일본은 잘 모른다. 세계인들을 향해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잘 배워라, 이런 뜻을 담았다."

- 일본과의 외교를 정상화할 해법은?

"한일 간의 위안부 갈등은 근본적으로 풀릴 수 없는 문제다. 상당한 세월이 필요한 사안이다. 한일 관계를 세월이 가면서 조금씩 나아지게 과거로 돌려야 되는데 자꾸 현재화를 시킨다. 우리는 아우성 치는 세력이 있으면 정부가 꼭 실기를 한다. 격양된 사람들에게 국가를 대표할 수는 없다고 말해야 한다. 정부가 비겁하면 나라가 망하는 거다. 그 점에서는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나 똑같다. 나라를 위해 한 번도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건 적이 없다."

- 우리나라 경제 활로는 어떤 식으로 찾아야 할까?

"시장경제에 대해 반감 가지는 사람이 유독 많다. 재벌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인데 사회가 성공한 기업에게 벌을 줘서 잘 되겠나. 규제도 심각하다. 면세점이 규제 때문에 폭삭 망했다. 제4차 산업혁명 따질 때 아니다. 사치다. 대형마트 휴일만 해도 그렇다. 규제를 하니 쇼핑이 온라인으로 빠지면서 재래시장까지 함께 죽었다."

- 알파고가 준 충격이 적지 않다. AI(인공지능)는 인류에게 축복이 될까?

"이미 우리 삶을 바꿔놓고 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스티븐 호킹 같은 과학자는 AI 연구를 막자고 했다. 모든 분야에서 시뮬레이션이 가능해지니까 효율성은 크게 올라갈 거다. 알파고 때문에 바둑의 혁명이 일어났다. 제조업뿐 아니라 삶을 설계하는 방법이 뛰어나질 거다."

- 암 진단 뒤 치료를 거부했다. 건강은 괜찮으신지 궁금하다.

"5년 전인가. 암 진단을 받았다. 예약을 하고 귀가하면서 이제 병원에 갈 일이 없다고 결심했다. 세 식구 만나서 가족회의를 했다. 남은 시간 동안 글을 써야겠다고 했는데 글 잘 쓰고 있다."

- 일과는 어떤가?

"무조건 아침부터 글을 쓴다. 그래야 편하다."

- 어떤 글을 쓰고 있나?

"이승만 대통령의 일대기를 소설로 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그것도 19세기에 태어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분이다. 역사가들이 왜곡을 해서 죄인으로 만들었다. 그 누명을 조금이라도 벗기고 싶은 욕심, 의무감에서 시작했다. 다 끝내놓고 죽으면 저는 행복하고, 끝내지 못하면 아쉽고 그렇겠지."

- 충청도 분들에게 당부의 말씀을 한다면.

"고향보다 대전을 자주 간다. 친구도 있고, 대전상고라는 뿌리가 있지 않나. 충청도 분들이 생각이 좀 깊다. 모두 균형 잡힌 감각을 지니셔서 쏠림 현상이 좀 적다. 믿을 만하지. 우리나라는 격정에 휩싸이는 게 흔하기 때문에 충청도 사람처럼 동작 느리고 말 굼뜬 사람들이 할 역할이 있다. 앞으로 충청도의 역할은 더 커질 것 같다."





-시인·사회평론 활동 왕성 산문집 등 저서50권 넘어



복거일 선생은 대전상고 재학중 학교 설립자인 우송 김정우 선생의 집에서 숙식했다. 당시 김 선생의 집에는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모였다고 한다. 우송 선생의 선친이 독립운동가 김노원 선생이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알게 모르게 대한민국의 현실을 돌아보고 자신의 미래를 고민했음직하다. 복 선생은 근작 '대한민국 보수가 지켜야 할 가치'에서 '지금은 대한민국의 보수 세력에 속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깊은 성찰의 시간'이라며 '넋의 알몸을 드러낼 때'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의 선택에 대해 겸허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돌아봐야 한다. 그런 성찰은 지적 정직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어서, 어려울 뿐만 아니라 괴롭다'고 썼다.

고교생 복거일은 재기 넘치고 총명했지만 일탈도 적지 않았다. 4·19 때는 자유당 간부가 대전 유성에 온다는 말을 듣고 몰려가기도 했다고 한다.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무역회사와 은행·선박연구소 등에서 근무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소설가이자 시인·사회평론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데뷔작으로 1987년 발표한 '비명(碑銘)을 찾아서'는 장편 대체역사소설로 화제가 됐다. 안중근 의사가 1909년 이토 히로부미 암살에 실패했다는 가정에서 출발해 일제 치하의 1980년대 모습을 그려 호평을 받았다. 다른 장편소설로 '높은 땅 낮은 이야기' '역사 속의 나그네' '파란 달 아래' 등이 있다.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은 어릴 적 기지촌 주변에서 자란 경험이 녹아 있다. 또 시집으로 '오장원의 가을'과 '나이 들어가는 아내를 위한 자장가'가 있다. 사회평론집으로는 '현실과 지향' '진단과 처방' '쓸모 없는 지식을 찾아서'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자유주의의 시련' 등 다수. 산문집을 포함하면 저서가 50권이 넘는다. '국제화 시대의 민족어'나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 등은 사회적 논쟁의 영역을 확장했다.

충청도 사랑이 깊다. 면천 복씨로 고려 때부터 1000년 넘게 충남에서 살았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인터뷰 도중 대전상고 동창회 모임을 알리는 전화를 받고는 선생의 입가에서 웃음이 끊기지 않았다.





복거일은 누구?



복거일 선생은 대전상고 재학중 학교 설립자인 우송 김정우 선생의 집에서 숙식했다. 당시 김 선생의 집에는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모였다고 한다. 우송 선생의 선친이 독립운동가 김노원 선생이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알게 모르게 대한민국의 현실을 돌아보고 자신의 미래를 고민했음직하다. 복 선생은 근작 '대한민국 보수가 지켜야 할 가치'에서 '지금은 대한민국의 보수 세력에 속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깊은 성찰의 시간'이라며 '넋의 알몸을 드러낼 때'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의 선택에 대해 겸허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돌아봐야 한다. 그런 성찰은 지적 정직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어서, 어려울 뿐만 아니라 괴롭다'고 썼다.

고교생 복거일은 재기 넘치고 총명했지만 일탈도 적지 않았다. 4·19 때는 자유당 간부가 대전 유성에 온다는 말을 듣고 몰려가기도 했다고 한다.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무역회사와 은행·선박연구소 등에서 근무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소설가이자 시인·사회평론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데뷔작으로 1987년 발표한 '비명(碑銘)을 찾아서'는 장편 대체역사소설로 화제가 됐다. 안중근 의사가 1909년 이토 히로부미 암살에 실패했다는 가정에서 출발해 일제 치하의 1980년대 모습을 그려 호평을 받았다. 다른 장편소설로 '높은 땅 낮은 이야기' '역사 속의 나그네' '파란 달 아래' 등이 있다.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은 어릴 적 기지촌 주변에서 자란 경험이 녹아 있다. 또 시집으로 '오장원의 가을'과 '나이 들어가는 아내를 위한 자장가'가 있다. 사회평론집으로는 '현실과 지향' '진단과 처방' '쓸모 없는 지식을 찾아서'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자유주의의 시련' 등 다수. 산문집을 포함하면 저서가 50권이 넘는다. '국제화 시대의 민족어'나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 등은 사회적 논란의 영역을 확장했다.

충청도 사랑이 깊다. 면천 복씨로 고려 때부터 1000년 넘게 충남에서 살았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인터뷰 도중 대전상고 동창회 모임을 알리는 전화를 받고는 선생의 입가에서 웃음이 끊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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