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헌법 개정 논의가 한창이다.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 집중의 폐해를 시정하자는 취지에서다. 3당 합의 개헌안은 대통령 임기는 4년으로 하되 차기 대통령에 한해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하고, 중임 제한 조항을 삭제해 차기 대통령부터 최장 11년까지 임기를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이 직접 뽑는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외교와 국방·통일을 담당하고, 나머지 행정권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국무총리가 통할하는 `이원집정부제`, 또는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안이다.

그런데 지금의 논의들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 처방도 틀렸다. 우리 정치의 적대적 대립과 갈등이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기인하는 것일까?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실제로 권력이 집중된 `제왕적 국회`가 더 문제다. 대통령은 인사권을 행사할 뿐, 임명한 관료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국정과제는 국회의 입법권과 예산심의권에 절대적으로 제약받는다. 또 이번 대통령 탄핵 사태에서 보듯 폭넓은 자율성을 인정받는 국회의 결의는 탄핵을 사실상 결정해버리는 권능을 발휘하고 있다. 국회의원 300인이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가 우려한 대로 `다수로 구성된 독재`의 권력을 행사하는 참주와 같은 형국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단원제 국회는 견제 장치 없이 민중에게 휘둘리는 아테네 민회와 흡사하다. 이러한 권력 지형 아래의 이원집정부제 개헌은 내치를 전담할 각료들을 연정의 명분 아래 정파의 야합에 따라 분배하게 만든다. 자연히 역량과 자질이 부족한 국회의원들에 의한 권력 독식과 국정 표류가 제도화된다. 또 여전히 대통령과 국회가 충돌할 때 이를 해소할 완충장치도 없다.

우리는 로마공화정의 성공에서 배워야 한다. 폴리비오스(BC 205?-125?)는 `역사`(Historiai)에서 로마가 아테네 민주정을 따르지 않고, 스파르타 정체를 모방하여 공화정을 만들어낸 독창성과 위대함을 찬양했다. 로마공화정은 철저하게 제 세력 간에 평등과 균형, 상호 견제의 원리가 구현되도록 설계되었다.

두 명의 집정관은 서로 견제하면서 행정권 집행에서 절대적 권력을 갖는다. 최고사령관으로서 군통수권도 행사한다. 전쟁 시에는 이 모든 권력을 한시적으로 한 명의 독재관에게 몰아준다. 마치 왕정과 같다. 그러나 국고 관리권은 원로원에 있다. 어떤 재정지출도 원로원의 동의가 필요하다. 또 반역, 음모, 각종 중범죄의 처리와 동맹국과의 외교도 원로원의 몫이다. 전쟁 선포와 외국 대사의 접견까지 도맡는다. 이런 면을 보면 귀족정이다.

하지만 법률 제정과 폐지, 시민과 공직자에게 영예를 수여하고 생사가 달린 재판의 주관과 선고의 비준, 동맹이나 적대 행위의 중지나 조약을 비준하는 권력은 평민들이 참여하는 민회에 맡겨졌다. 이는 민주정의 모습이다. 로마공화정은 이 세 정체의 특장을 살린 혼합정이다. 요즘으로 치면 집정관은 대통령, 원로원은 상원, 민회는 하원과 유사하다. 세 힘이 존재함으로 해서 어느 누구도 독단적 권력을 발휘할 수 없었고 상호 의존성을 높여 협치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로마공화정은 집단 간에 서로를 두려워하면서도 필요로 하는 관계로 만든 효과적인 통치구조였다. 그러나 우리의 통치 집단에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되지 않고 오로지 `승자 독식의 원리`만 지배한다.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개헌의 초점은 국회에 맞춰야 한다. 국회에 내치의 조각권을 주고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을 부여하는 것은 이원집정부제의 필수조건이다. 또 단원제 국회의 폭주를 막기 위해 지역의 인구비례에 의해 선출되는 하원과, 권역과 계층의 이해를 대변할 상원을 두어 서로 견제하게 해야 한다. 정당의 사천(私薦)으로 타락한 비례대표 제도는 응당 폐지해야 한다. 상·하원의 임기는 각각 2년으로 하되 선진국의 예를 참조하면 하원은 100명, 상원은 50명 정도면 충분하다. 회기 중 불체포특권 등 국회의원의 과도한 특권들은 폐지해야 마땅하다. 300인 참주를 폐하라. 개혁 대상에게 개혁의 권력이 주어져 있는 현실이 암담할 뿐이다.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