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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아산 민간인 집단 학살 추정 매장지 첫 발견

2017-03-17기사 편집 2017-03-17 10: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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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진실화해위원회 아산유족회 김장호 회장이 아산 부역혐의 희생 사건의 집단학살장소이자 매장지인 폐금광 입구로 추정되는 장소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탐침봉으로 땅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 김광욱씨의 부친은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때 배방 폐금광에서 살해됐다. 사진=윤평호 기자
<속보>=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공권력이 결합한 백색테러로 다수의 민간인이 숨진 '아산 부역혐의 희생 사건' 희생자들이 묻힌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가 최근 주민의 증언으로 발견과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본보 2015년 11월 10일 5면·11일 5면 보도> 아산시는 주민들과 유족들이 아산 부역혐의 희생 사건 희생자들이 묻힌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대해 조만간 정부 관계기관에 발굴조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지난 15일 아산 부역혐의 희생 사건의 유족들은 온양경찰서 경찰과 치안대 등에 의해 가족이 끌려가 집단으로 살해돼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아산시 배방읍 야산의 폐금광 입구 앞에서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이봉의(78·아산시 배방읍 중리)씨는 진실화해위원회 아산유족회 김장호(75) 회장을 아산시 배방읍 수철리 설화산 자락의 한 야산으로 안내했다. 623지방도로변에 차를 주차하고 야산을 오른 지 15분쯤 지났을 때 이씨는 나무들 사이로 한 곳을 가리켰다. 이씨는 "내가 여기서 컸기 때문에 잘 안다"며 "6·25때 눈은 푹푹 쌓이고 저 앞에 방앗간이 있었는데 사방에서 사람들을 데려와 거기에 넣고 100명씩 끌고와 총 쏴서 죽였다. 겨울인데 오후 5시부터 밤 9시까지 했다." 이씨는 "몇 명이 죽었는지는 셀 수도 없다"며 "폐금광 안에 사람들을 넣고 죽인 뒤 흙으로 입구를 막았다"고 증언했다. 이씨가 폐금광 입구로 지목한 곳에 2m의 탐침봉을 넣자 주변의 다른 땅들과 달리 큰 힘을 주지 않아도 장애물 없이 쑥 들어갔다.

이씨의 증언은 실제 신빙성이 컸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위)는 아산 부역혐의 희생 사건을 민간집단희생으로 2009년 5월 진실규명 결정을 했다. 과거사위는 진실규명 결정에 앞서 2007년 1월부터 아산 부역혐의 희생 사건을 조사했다.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1·4 후퇴 시기 배방면 창고에 감금됐던 이들은 중리3구 정미소(구 금방앗간)로 옮겨져 살해된 후 폐금광에 매장되거나 폐금광에서 살해됐다. 과거사위는 폐금광 등 배방에서 숨진 주민들 수가 200-300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과거사위는 2년 여의 조사에도 불구하고 폐금광 위치는 오랜 시간이 흘러 장소를 특정하지 못했다. 이번에 발견한 폐금광 입구는 아산유족회 김장호 회장이 마을 경로당을 다니며 수차례 주민들을 수소문한 끝에 이봉의씨를 만나 알려졌다.

집단학살장소이자 매장지로 추정되는 폐금광 입구 확인에는 아산이 고향인 김광욱(72)씨도 동행했다. 김씨는 "다섯 살 때 아버지와 아버지 형제 두 분이 온양경찰서에 끌려 갔다가 금광에서 살해 당했다고 어머니와 가족들이 과거사위 조사에서 진술했다"며 "오늘 폐금광 위치를 확인하니 가슴이 메어진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아산유족회 김장호 회장은 "민간인들이 희생된 폐금광일 가능성이 높은 이곳에 대한 발굴을 신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산시 자치행정과 관계자는 "발굴은 국가사업"이라며 "중앙정부에 발굴을 건의하고 지역보존을 위해 산주와 허락해 안내판 설치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아산 부역혐의 희생 사건은 한국전쟁 시기인 1950년 9월 말부터 1951년 1월 초까지 최소 77명 이상이 인민군 점령시기 부역했다는 혐의와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온양경찰서 소속 경찰과 대한청년단, 청년방위대, 향토방위대 등에 의해 배방산 방공호와 폐금광, 염치면 대동리, 선장면 군덕리, 탕정면 용두리1구, 신창면 일대 등에서 민간인을 집단 살해한 사건이다. 과거사위는 아산 부역혐의 사건으로 숨진 민간인 규모로 800여 명을 추정했다. 윤평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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