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벼농사를 그만 지으라며 권고하고 나섰지만 미봉책으로 끝날 모양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확정한 `2017 중장기 쌀 수급안정 보완대책` 주요내용은 벼 재배면적 3만 5000ha 감축, 복지용·사료용 쌀 공급확대 등이다. 재고를 줄이기 위해 개도국 원조등도 추진할 방침이다. 이중 벼 재배면적 감축은 농민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아 얼마나 달성할지 미지수다. 참여농가와 지자체에 인센티브를 제공한다고 했지만 정부포상, 고품질 쌀 유통 활성화 사업 우선 선정, 배수개선 기본조사 지구 선정 등 크게 와 닿지 않는다. 예산지원 없이 재정난에 시달리는 지자체에 맡겨 울며 겨자먹기다. 그런 만큼 충청권은 현재까지 신청이 저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연 감소분 외에 그다지 참여가 많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농민 입장에서는 직불금이라는 보장된 소득이 있고 팔다 남은 쌀은 정부가 다 사주는데 굳이 포기할 필요가 없다. 농민 10명 중 4명이 65세 이상 고령자여서 작목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있다.

해외 원조는 비용이 보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들어 실효성이나 타당성 등도 따져봐야 한다. 사료 전용이나 가공품 개발은 재고 줄이기나 쌀값 지지에 제한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농민들이 요구한 쌀 생산조정제 등은 반영되지 않아 반발만 불렀다.

벼 재배면적 줄이기를 추진하는 것은 소비가 급감, 쌀이 남아돌며 찬밥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민 한 사람 당 하루 평균 쌀 소비량은 169.6g에 그쳤다. 밥을 하루에 한 공기 반 정도 먹은 셈이다. 연간 61.9㎏으로 30년 전인 1986년 127.7㎏의 절반에 불과했다. 1984년부터 30여 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줄곧 떨어졌다. 올해는 더 줄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59.6㎏으로 전망됐다. 쌀 소비가 줄어든 것은 국민들의 식생활 변화가 가장 큰 원인이다. `밥심으로 산다`는 이제 옛말이 됐다. 아침 식사를 쌀 이외의 식품으로 대체하거나 거르고 건강식에 관한 관심이 높아져 잡곡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 육류 위주의 서구화된 식단을 선호한다. 반면 쌀 생산은 여전하다. 벼 재배면적은 해마다 감소하지만 다수확 품종이 보급되고 재배기술이 향상되면서 매년 풍년을 이뤄 쌀 수확량은 되레 늘었다.

쌀 소비는 줄고 생산은 늘며 갖가지 부작용이 속출한다. 가격 폭락이 가장 큰 문제다. 작년 말 산지 쌀값이 1995년 이후 21년 만에 최저치였고 농민들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13만 원대가 깨졌다. 그 결과 공공비축미나 시장격리곡 매입가격이 농가 우선지급금에도 못미쳐 제도 시행 후 최초로 농민들이 초과 지급된 돈을 반환해야 할 처지가 돼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가격차액을 보전하는 변동직불금도 1조 4900억 원에 달했다. 본래 1조 4977억 원이었으나 세계무역기구(WTO)가 정한 농업보조금 상한액 1조 4900억 원을 초과, 깎아내리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200만t을 넘은 재고도 골칫거리다. 보관비만 한해 600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여기에 고정직불금 8383억 원등을 합하면 벼농사에 들어가는 국민 세금이 3조 원 가까이 된다. 혈세로 벼농사를 지탱한다는 비판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쌀 수급안정책이 헛바퀴 돌 가능성이 큰 반면 농민단체들은 표를 무기로 대선주자 공략에 나섰다. 쌀전업농중앙연합회가 우선지급금 상환 해결, 생산조정제 도입 등을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에게 제안,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다고 한다. 우리 벼농사는 이제 정부가 만든 온실 속 안주가 한계에 다다랐다. 현실을 도외시하고 정치적으로 물타기를 하면 `쌀 대란`은 언제 끝날지 예측조차 어렵고 재정부담은 국민들의 몫으로 돌아온다. 공급을 줄이는 근원적 처방이 불가피하다. 벼 재배 면적이나 농지 면적을 줄이는 방법 밖에 없다는 해법이 나와있는 거나 다름없다. 절대농지 축소나 생산조정제 등도 검토할 때다. 쌀 문제가 많은 논쟁과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매년 반복되는 이유는 원인과 해법을 뻔히 알면서도 해결에 나서지 않는 무능한 농정 때문이란 비난을 곱씹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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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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