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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논단] 노동의 배신에서 희망의 노동으로

2017-03-15기사 편집 2017-03-15 17: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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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저서 '노동의 배신'에서 스스로 워킹푸어의 현장에 뛰어들어 웨이트리스, 청소부, 요양보조원, 월마트 판매원 등으로 일한 뒤에 '자본주의 민주 국가에 속한 자유로운 노동자인 저임금 노동자들이 늘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전혀 자유롭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임금, 그리고 중간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대다수는 직장에 들어설 때 시민으로서 누리는 자유권을 모두 다 문 밖에 두고 와야 한다'라고 썼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개념은 이제 지겹기까지 하다. 한국에서는 유독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명목 하에 비정규직 활용과 해고의 자유로운 단행이 이루어져 왔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고통 분담의 차원에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화하자는 논리는 설득력을 얻었다. 그리고 노동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가치의 변화가 없이 단순한 시장논리를 들이댄 결과는 결국 고스란히 개개인의 노동자에게 돌아갔고 고통의 분담은 노동자가 전담하게 된 형국이다.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파면된 대통령의 모습을 뒤로 하고,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기획하기 위한 더 큰 과제를 안고 있다. 사회 곳곳에 만연한 불합리와 싸우기 위한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하는 것은 단연 노동문제이다. 결국 먹고 사는 문제는 노동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선주자들은 저마다 노동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초점은 대개 자본을 투하하여 일자리를 늘리는 것에 맞춰져 있는 듯하다.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답인지 의문이 든다. 현 노동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노동의 하청화 및 비정규직의 확대이다.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지만 현 노동시장의 악습을 개선하지 않고는 미봉책에 머무르게 될 뿐이다. 노동의 신성함이 지루함과 고통의 다른 말이 된 현 시대에서 노동의 가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다면 새로운 시대는 또 다른 고통의 역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월 24일 전주시 인근 저수지에서 열아홉 살의 홍양이 자살했다. 홍양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SNS에 남긴 말은 '내일도 회사에 가야 하는 구나'라는 탄식이었다. 단순한 한마디 속에서 밥벌이의 서러움과 희망을 보지 못하는 내일, 노동환경의 열악함, 한스러움이 묻어나온다. 홍양은 LG유플러스의 콜센터 LB휴넷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하고 있었다. 특히 홍양이 근무하던 부서는 고객가입 해지를 막는 부서로 소위 '욕받이 부서'로 불렸다.

노동시장의 왜곡은 노동자 개인들의 삶에서 여유를 앗아갔다. 켜켜이 쌓인 불만들은 다른 노동자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도 빼앗았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오히려 노동자 개인의 유연성을 앗아간 것이다.

홍양의 죽음 한편에는 폭력적인 소비자도 존재한다. 그 소비자는 또한 노동자이기도 할 것이다. 대다수의 개인들은 소비자이자 노동자라는 이중적 지위를 안고 있다. 노동자로서 힘든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자신이 소비자의 지위에 들어서면 열심히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삶의 불만을 다른 노동자에게 표출하고는 한다. 이런 모순된 모습의 연원은 왜곡된 노동시장과 노동환경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대한민국 헌법 제32조 제3항은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현재의 노동시장이 인간의 존엄성을 충분히 보장해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노동의 가치가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것은 경제성장의 논리가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경제가 좋아지는 것을 누가 부정하겠냐마는 과연 노동의 유연화로 이루어 낸 경제성장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개선했는지 되묻고 싶다.

봄이 왔다. 과거의 악습과 폐단에 안녕을 고하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구축할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던 국민들의 열망은 이제 변화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 희망이 또 다른 실망과 절망으로 치환 되지 않도록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대선주자들은 노동문제를 해결할 보다 근본적이고 적극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김우찬 법률사무소 다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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