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은살아있다] ⑥ 한국족보박물관

한국족보박물관 전시실
한국족보박물관 전시실
대전 중구 침산동 뿌리공원에 가면? 성씨별 조형물도 있고, 십이지지를 형상화한 뿌리 깊은 샘물도 있고, 산림욕장도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나라 성씨와 족보를 총망라하는 한국족보박물관이 있다.

전국 유일의 효(孝)테마공원인 뿌리공원과 연계해 2010년 4월 개관한 한국족보박물관은 지역명인 `대전`이 아닌 `한국`이 들어간 유일한 족보박물관으로 역대 조상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체험학습의 산교육장이다.

한 나라의 역사는 기록으로 남는다. 국가의 흥망성쇠를 기록한 것이 역사서다.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은 공적인 영역에서 남긴 역사기록이다. 야사(野史)라 불리는 사적인 역사 기술은 공적인 역사기록의 빈틈을 채워준다. 몇몇 위인에 의한 역사의 부침을 기록한 것이 공적 영역의 역사서라 한다면,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 한 채 이 땅에 살다간 사람들의 기록이 족보에 담겨 있다. 성씨의 유래를 찾아볼 수 있는 뿌리공원에 위치하고 있어 박물관에서 자신의 성씨와 족보를 공부한 후 뿌리공원에 있는 관련 성씨 조형물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국인의 족보 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

한국족보박물관은 그동안 사가의 기록 영역에 남아 있어 중앙에서 관리되지 못했던 족보를 한 자리에 모아 연구하고 전시할 수 있게 구성한 국내 최초의 족보 전문 박물관이다.

족보를 비롯한 가계(家系) 기록은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성경에서 예수의 계보가 등장하고 유태인들은 혈통을 중요시 했다. 또 중국의 족보를 모방해 만든 것이 우리나라의 족보라고 본다면 가계기록 문화는 세계의 보편적인 문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족보가 소중한 이유는 그 수록 범위에 있다. 왕족이나 특별한 혈통을 기록한 것이 아닌 양반, 중인, 양인까지도 족보에 기록됐다. 족보는 양반의 인명을 기록하는 것이 원칙이나 후대로 내려올수록 그 수록 범위가 광범위해졌다. 특별한 업적이 없어도 한국인의 족보에는 그 기록을 남길 수 있다. 서양의 족보가 직계 조상 혹은 특정 가문의 역사 인물을 기록한다면 우리의 족보는 기록의 범위가 넓다고 할 수 있다. 역사의 뒤안길에 잊혀져 간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기록된 것이 한국인의 족보이고, 역사를 만들고 지탱해온 무명의 선조들이 기록된 것이 우리 조상의 족보이다.

한국족보박물관은 한국인의 성씨와 가문을 주제로 해 공원은 대전 중구청이 조성하고 성씨 유래비는 문중에서 제작하는 민·관 합작 공원으로 탄생했다. 1997년 11월 뿌리공원 개장 당시 72개 문중이 참여해 조성된 공원은 2008년 64개 성씨, 2016년에는 88개 성씨가 추가로 참여해, 현재 224개 성씨의 유래비가 조성돼 있다. 넓은 잔디광장에 문중별로 특색 있게 조성된 224개의 성씨 유래비에는 시조를 비롯해, 문중의 유래 등 후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등이 담겨 있어 체험학습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한국족보박물관에서 유물로서의 족보에 주제를 집중하고 보니, 문중과시로 인한 사회분열이라는 족보의 부정적 이미지보다는 화합과 공존이라는 초기 족보의 정신을 부각하고 있다. 초기 족보를 살펴보면 본래 성씨만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집안과 관련된 모든 성씨를 기록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외손과 사위, 장인의 이름이 본 성씨보다 더 많은 것이 초기 족보의 모습이었다. `충주박씨내 외자손보`나 `안동권씨 성화보`, `문화류씨 가정보`가 이에 해당한다. 또 `고성이씨 선세외가족보`의 경우 시집을 온 할머니의 가계를 정리해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족보를 보면 나와는 다른 성씨를 가진 모든 사람이 어느 대에 이르러서는 나와 피를 나눈 가족임을 생각하게 된다.

◇족보 개론서 보듯 관람하는 전시실

보학(譜學)은 정규 교육 과정에 해당하는 학술연구의 한 분야로 분류돼 체계적인 학문으로 정립되기보다는 양반 집안에서 대를 이어 책상물림으로 배운 가학으로 재야학문의 성격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박물관 전시는 족보라는 책을 소개하는 개론서를 집필하듯 구성해 전시실만 보면 족보를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다. 족보의 체제를 전시하는 제1전시실에서는 박물관의 주요 유물인 족보가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한다. 족보에서 다루는 씨족의 개념에서 족보라고 불리는 책을 구성하는 요소를 나열 전시하고 있다.

제2전시실에서는 족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간행이라고 하면 인쇄를 연상하기 쉽다. 인쇄가 유형물로서의 책을 만드는 과정이라면 족보박물관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족보의 내용을 만드는 사람들의 행위가 담긴 과정을 중심으로 한다. 전시실 중앙에는 파보소(波譜所)를 중심으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던 개인의 소소한 일생과 개인의 일상사를 기록하기 위해 바쁘게 통문을 전달하는 사람들을 닥종이 인형으로 연출했다. 쇼케이스에는 족보를 편찬한다는 신문 공고에서 한 집안의 족보가 간행되기까지 수집해야 하는 수단(收單)과 족보 초고, 교정본들이 전시돼 있다.

족보의 역사를 전시하는 제3전시실에는 최초의 가계기록이라 할 수 있는 광개토대왕비를 비롯해, 현대에 제작된 전자 매체 족보까지 족보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보여준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 거대한 연표와 함께 시대별 족보를 전시하고 있다.

현대적 의미의 책 형태를 지닌 최초의 족보는 `안동권씨 성화보`이다. 15세기의 대표적인 족보로는 `문화류씨 가정보`가 잘 알려져 있다. 한국족보박물관에서 일반인이 볼 수 있는 최고 오래된 원본 족보는 고려시대 김방경 장군을 시조로 하는 `안동김씨 경진보`이다. 3전시실은 연표 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박물관과는 달리 입체적으로 구성한 연표를 역사의 오솔길을 산책하듯이 돌아 볼 수 있도록 구성해 지루함을 덜어냈다.

제4전시실에는 왕실의 족보를 전시하고 있다. 왕실도서 자료인 장서각 소장 족보를 촬영, 재현품으로 전시하고 있다. 사가의 족보는 평소 보기 어려웠던 자료를 다채롭게 전시해 관람객이 족보의 다양한 세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제5전시실에서는 조선 후기 보학의 발달에 따라 등장한 만성보와 다양한 형태의 족보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손바닥보다 작은 휴대용 족보에서 돌족보 등 형태적인 다양성과 만성보, 문보, 무보 등 내용적인 다양성을 모두 볼 수 있도록 전시했다. 특히 충남 홍성군의 지정 문화재인 연산서씨 석보는 우리나라에서 유사한 사례가 단 한 건도 발견되지 않았을 만큼 특별한 사례로 그동안 일반 대중에 공개되지 않았던 자료다. 또 만성보, 문보, 무보 등 팔세보류를 전시해 조선 후기 족보문화 난숙기를 볼 수 있다. 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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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족보박물관 전시실
한국족보박물관 전시실
한국족보박물관 외경. 사진=한국족보박물관 제공
한국족보박물관 외경. 사진=한국족보박물관 제공
한국족보박물관 입구 모습. 사진=한국족보박물관 제공
한국족보박물관 입구 모습. 사진=한국족보박물관 제공

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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