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0일, 대한민국 역사상 법률 위반으로 대통령이 파면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헌법재판관 8명 전원의 탄핵 인용은 국민 80% 이상이 탄핵에 찬성한 눈높이와도 일치하는 판결이다. 이번 대통령의 파면은 단연 촛불집회로 드러난 국민 주권의식의 승리로 해석되고 있다. 당분간 혼란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헌법재판소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강하게 확인시켰다는 점에서 오히려 한국이 좀 더 성숙한 자유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탄핵심판과 특검수사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의 건강하지 못한 취약점들이 여실히 드러났다.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쳐야 할 과제들이다. 우선, 국민의 참여가 배제된 채 일방통행 식으로 국정이 운영되었다. 그 사이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이나 관료 등 파워 엘리트들은 철저하게 자신과 그들 집단만의 이익을 위해 국가권력을 사유화했다. 실제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되어 재판에 넘겨진 인사들은 서로 의기투합하여 그들 편이라고 여겨지는 이념적 진영과 그리고 그들의 보스를 위해 헌신한 것으로 드러나 공분을 사고 있다. 국민들이 그토록 염원하고 기대했던 참여를 통한 공평성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한국은 누구나 자유를 누리면서 창의를 꽃피울 수 있는 밝고 자유로운 사회라는 믿음도 깨졌다. 블랙리스트는 국민의 편을 가르고 차별적으로 대우함으로써 사회를 어둡고 음습하게 만들었다. 정부가 앞장서서 상상력이 뛰어난 자유민주주의자들의 입을 막고 행동을 제한함으로써 창조성을 억압하는데 기여했다. 커다란 국가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지구상에는 제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몰아치고 있는데, 하마터면 그것을 싹틔울 수 있는 기반조차 만들지 못할 뻔했다. 다음 정부는 국민들이 이런 억압과 불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도록 치유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되었다.

특히, 이번 사건을 통해 일부이긴 하지만 21세기에도 대통령을 위임받은 심부름꾼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전제군주시대의 군주나 왕 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 전근대적인 수직적 이념의 문화가 잔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비록 소수일지라도 종적 가치관의 보유는 사회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개방체제로 발전해나가는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속칭 금수저 계층이나 영악한 파워 엘리트들이 일반 국민과는 차별화된다는 불평등한 지배의식과 제도를 당연한 것으로 착각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의 착각은 결국 치유하기 어려운 국가적 혼란을 초래한다는 사실이 이번에 잘 증명되지 않았는가.

서구 문명사회는 300여 년 전에 이미 시민혁명을 통해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자들이 국민의 대리인이라는 인식과 제도를 강력하게 확립했다. 특히 통수권자는 일반인보다 모든 면에서 더 모범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윤리적 가치관이다. 공정한 수평적 가치관은 사회 전반에 창조적 생산을 촉진시키기 때문에 사회발전을 위한 중요한 무형의 자산이다. 미국의 많은 유명 인사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편견에 반기를 들고 있다. 얼마 전에는 애플사가 FBI의 암호 해독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기도 했다. 이것은 공평성과 수평적 사고가 바로 사회정의라는 이념으로 무장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그들의 전체 조직은 건강하다.

우리에게도 분명히 희망은 있다. 일련의 촛불집회가 보여주었듯이 서슬 퍼런 권력에 굴종하지 않겠다는 창조적 자유민주주의 신봉자들이 대다수라는 사실이다. 이번 탄핵사건은 제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법과 국민의 힘으로 해고할 수 있다는 수평의 역사를 새로 썼다. 이제 60일 안에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치러질 것이다. 선거에 나서는 예비 주자들은 국가의 안정과 발전, 그리고 자신의 영광을 위한 답이 공평과 수평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안상윤 건양대학교 병원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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