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라는 인공지능 컴퓨터가 바둑으로 인간을 이겼다. 다섯 차례의 대국에서 단 한 번 이세돌이 승리했을 뿐이다. 대부분 사람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사건이다. 기껏해야 복잡한 계산기 정도로 인공지능을 생각하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가장 복잡한 경우가 존재한다는 바둑에서 기계가 이세돌 9단을 상대로 승리하는 모습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서양의 장기인 `체스`에서 기계가 사람을 누른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그럼에도 바둑만은 인간의 영역이지 않았던가. 이번의 승리로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놀라움을 넘어서 인공지능이 도대체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으며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 진행되면서 이세돌의 압승을 기대하던 우리 마음은 하루하루 안타까움과 아쉬움으로 편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고뇌에 차있고, 고심하며 한 수 한 수 기계를 상대하는 이세돌의 모습은 아직도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난다. 결국 기계도 인간이 만든 것이고, 그만큼 발전을 이뤘다면 우리에게 많은 이득을 줄 것이므로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니었을까. 왜 내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고, 단 한 번의 승리에 진한 감동을 했는지 모르겠다. 기계는 이제 우리의 부속물이 아니고, 우리를 상대하며, 우리를 넘어설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 아니었을까. 바둑의 신, 바둑의 천재를 상대하며 승리를 챙기는 모습에 평범한 우리는 또 얼마나 작아졌던가.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 일의 상당 부분은 단순하고 반복적이다. 때가 되면 물을 줘야 한다든지, 비슷한 형태의 질문에 비슷한 답변을 해야 하는 것, 은행에서 입출금 결산을 하는 것, 사람이 오면 문을 열어주는 등 우리 주변에 기계가 대신해도 될 만한 일이 많고, 실제로 대신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의료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은 비슷하고 일상적이며, 규정을 따른다. 소위 책에 나와 있듯이 예외는 별로 없고 `교과서적`이다. 증상과 진단 그리고 치료가 대부분은 비슷하다. 반복되는 일에 기계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터무니없는 실수를 줄여주고, 일상적인 일을 빠르게 처리하며, 효율을 높여줄 것이다.

처음 의사 일을 시작할 때 내가 하는 일 대부분은 단순하고 간단한 일들이었다. 소위 잡일이 대부분이었고, 업무량이 과도하게 많았다. `이런 잡일을 하려고 이렇게까지 공부를 해야 했나` 같은 회의감이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보다 더 많이 들던 때가 있었다. 환자의 차트를 정리하고 구분하며, 필름을 찾는 일 등 도무지 머리가 필요 없는 단순한 일들이었다. `이런 간단한 일을 해주는 기계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었다. 실제로 요즘은 이런 일을 사람이 하지 않는다. 병원의 단순 업무 대부분은 전산 시스템으로 해결한다. 더 나아가 방사선 사진을 판독해주는 프로그램이 있고, 병을 진단하는 프로그램도 연구되고 있다.

물론 좋은 실력은 좋은 의사의 기본이다. 이것저것 잘 알고, 최신 지견을 습득하고 있어야 한다. 실수 없이 빠르게 진단하고 치료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이런 점은 기계가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 빠르게 환자의 증상과 검사치를 분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의학 관련 영상자료를 더 정확하게 판독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최신 의학 자료를 참조해 가장 가능성 높은 진단을 찾아낸다. 물론 수술 영역에서는 아직 조금 다른 얘기이지만, 발달하는 인공지능이 이제 실력 있는 의사에 좀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다행히 실력 있는 의사가 다는 아니다. 의사 생활을 하면 할수록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의학 그 자체보다는 환자, 진단과 치료의 정확성보다는 환자의 만족도 등이 더 중요하다. 환자의 `병`에 대한 관점보다는 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은 의사가 가져야 하는 자질이라는 생각이 든다. 환자의 이야기를 잘 듣는 능력, 어려움을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 등이 실력 못지않게 중요하다. 지능이라기보다는 감성이지 않은가. 아직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다.

이런 진료실을 상상할 수 있다. 냉철하고 실수라고는 거의 없는 컴퓨터 의사 프로그램이 당신에게 말한다. "당신이 이 병에 걸렸을 확률은 80%이고, 이 병으로 5년 이상 생존할 확률은 30%입니다. 제 말이 맞지 않을 확률은 0.05%입니다. 안타깝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의사와 진료실의 모습인가. 실수가 없고, 단호하며, 정확하게 우리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완벽한 컴퓨터가 우리가 원하는 의사일까. 김정구 가톨릭대학교 위장관·혈관이식 외과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