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발생한 해인 1986년.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새로운 근대를 향하여`라는 책에서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로 정의했다. 기술과 사회의 고도화된 복잡한 연결망이 형성되면서 더 이상 위험을 소거할 수 없는 사회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산업화사회 이후, 각종 과학기술의 발전은 편의와 이익을 제공하는 동시에 그만큼의 위험을 가져다 준 것이 사실이다. 아인슈타인의 물질과 에너지가 상호 전환될 수 있다는 특수상대성이론에 기초한 원자력발전도 편익과 위험이라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원자력발전이 주는 편익도 크지만 체르노빌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잘못 관리됐을 때 오는 위험은 편익을 압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바로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원자력에 대한 진중한 성찰이 필요한 이유다.

최근 한국원자력연구원(이하 원자력연구원)에 대한 지역사회 불신이 깊다. 방사성 폐기물 무단 폐기와 반입, 내진보강공사 부실 의혹, 파이로프로세싱 연구에 대한 지역 주민의 걱정과 우려가 그것이다. 사실 원자력연구원으로 인한 주민들의 불안감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가 지난 1995년 가동된 이후 수시로 크고 작은 원자력 사고가 12건이나 발생했다. 중·저준위폐기물은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고, 고준위폐기물은 4.2t이나 보관되고 있다.

원자력연구원은 항상 안전과 소통을 이야기하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외부에서 의혹이 제기된 뒤에야 비로소 시인하는 양상을 반복해 왔다. 원자력시설이 고도의 과학기술의 집약체이다 보니 전문적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주민들이 선뜻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주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 소통과 정보제공은 과학자의 오만함으로 비추어져 불신만을 초래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원자력연구원이 우리 지역에 있음으로 인해 과학도시라는 브랜드가치를 높인 공헌은 부인할 수 없지만 같은 공간에 살고 있는 지역주민의 안전을 위해 정직한 소통과 진솔한 대안을 마련하는데 있어서 주민과 함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러한 취지에서 그 동안 지역사회에서 공론화된 다음과 같은 요구에 귀 기울여 줄 것을 제안한다.

먼저 현재 원자력안전연구원 폐기물 담당부서가 이원화, 삼원화돼 있어 폐기물의 종합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원자력안전연구원은 폐기물 담당부서를 일원화하고 시설 운영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서 안전한 폐기물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두 번째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파이로프로세싱 핵재처리 기술은 외국에서도 검증되지 않은 기술로 이의 연구를 위한 폐기물반입을 서두를 것이 아니라 충분한 주민 설명과 검증이 전제가 돼야 한다. 세 번째로 하나로 내진공사와 관련해 하청에 하청을 줌으로서 부실공사를 초래한 것에 대해 원자력안전위원회와 미래부는 특별조사팀을 구성해 부실문제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를 시행하고 그 결과를 지역주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네 번째로 원자력안전위원회와 원자력연구원은 지역주민과 자치단체가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기존의 폐쇄적인 원자력안전협의회가 아니라 일본의 경우처럼 지방정부와 원자력발전 관리주체가 함께하는 `원자력안전협정`을 체결해 원자력 시설의 건설, 변경, 재가동에 있어 지방정부의 동의를 받을 수 있는 제도마련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원자력연구원 인근주민과의 소통으로 신뢰회복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역 주민 채용 확대, 원자력 관련 사업에 지역 기업 우선 선정, 민간단체 환경 감시 활동에 대한 지원 등 지역주민을 포용함으로써 주민 스스로 원자력 안전을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을 높일 필요가 있다.

원자력발전이 불안한 에너지가 아니고 편익을 주는 에너지로 인식되게 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합리성과 사회적 합리성이 서로 공존하고 조율하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이를 위해 정확한 정보제공과 주민과의 소통을 통한 신뢰회복이 시급히 필요하다. 일방적 추진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우선이기 때문이다.

구본환<대전 유성구의회 행정자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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