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배 논설위원
나병배 논설위원
격랑의 탄핵 정국에서 바른정당 입지가 애매해 보인다.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이후 자유한국당(옛 새누리당)과 결별하고 딴 살림을 차렸건만 상응한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현실이 증명한다. 당장 2명 있는 대권주자들이 뜨지를 않는다. 탄핵안 표결 전이나 후나 지지율 순위표 끝자락을 맴돌기는 마찬가지 같다. 이 여파로 인해 초반 반짝하던 당 지지율도 초라해졌다. 32석 정당이 6석 정의당에 4위 자리를 위협받을 정도로 사정이 궁박해 보인다.

잘 안 나가는 정당 얘기이어서 겸연쩍다. 그럼에도 탄핵안 가결의 결정적 변수로 기능했음을 떠올리면 바른정당의 이제까지 궤적을 한번 복기하지 않을 수 없다. 바른정당은 박근혜 정부에 대해 앙금이 쌓인 사람들이 주축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고 사연은 다르나 한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同舟共濟) 정치적 동지애를 접은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배경이 작용했는지 작년 12월 탄핵안 가결을 주도한 보이지 않는 주체가 바른정당 의원들이다. 숨은 공로가 드러나지 않은 스포츠 선수를 지칭하는 `언성 히로우(unsung hero)`라는 말이 어울린다.

그런 그들은 과연 변변한 정치적 실익을 챙기고 있는지 따져볼 일이다. 나중 일을 예단키 어렵다 해도 지금 시점에선 야권에 멍석을 깔아주고 변방으로 밀려난 신세와 다르지 않다 할 것이다. 이는 바른정당이 직면한 탄핵안 딜레마의 시작점이자 본류로 볼 사유를 충족시키는 문제일 수 있다. 바른정당 사람들도 정치적 지향 및 가치가 있을 터이고 이를 추동함에 있어서 탄핵안 카드는 강력한 실험적 성격을 띠었다. 바른사람들은(자유한국당에 적잖은 수가 잔류해 있지만) 끝내 결행을 서슴지 않았고 이에 힘입어 탄핵안은 넉넉히 처리될 수 있었다.

바른정당 의원들과 이들에게 심정적으로 동조한 의원들이 탄핵안에 반대했더라면 정국은 달리 전개됐을 가능성이 크다. 탄핵안 표결 시 의석 분포 면에서 여권 이탈표가 찬성 표를 던졌기 때문에 대통령 소추가 개시될 수 있었고 그렇게 생성된 폭탄은 헌재 8명 재판관들이 떠안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내일 헌재 최종 선고만 남겨두고 있다. 야권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바른정당을 평가해야 줘야 할 입장이다. 작년 4월 총선에서 여당이 망했다고는 해도 120석 이상을 건졌다. 단일 정당이 100석 이상 획득하게 되면 탄핵안도 개헌안도 밀어붙이지 못한다. 광장의 여론을 업는 것과 헌법적으로 탄핵안을 발의·처리할 권한이 국회에 부여돼 있으므로 당연하다. 헌재의 인용 혹은 기각·각하 판단은 그 후의 작용이다.

바른정당에겐 조기 대선 정국을 격발시킨 공이 적지 않다. 여기서 묘한 역설이 성립한다. 바른정당이 작위적 탄핵안 처리를 불사했을 때는 나름의 계산법이 서 있었을 것이라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대선 국면에서 무슨 복안이 있을 것이라 의심치 않았고 개헌 이슈와 관련해서도 제법 단단한 고리 하나는 담보됐을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그동안 전개돼온 상황을 보면 별다른 복주머니가 감지되지 않는다. 탄핵안 화살을 시위에 걸어 헌재를 향해 당기는 데에는 일조했지만 그 이후 개혁적 보수세력으로 인정받았다는 단서가 시원치 않다는 데에 중론이 모아진다.

최대 수혜자는 민주당과 그 곳에 적을 두고 있는 대권주자들이다. 탄핵안 처리를 기점으로 대통령 권력이 진공 상태에 진입하면서 민주당과 유력 대권주자들 지지율 상승의 동조화 추세가 굳어지고 있는 것도 바른정당의 존재가 아니고는 자연스럽게 설명되지 않는다. 요컨대 바른정당은 탄핵 정국의 작위적 내응 세력에 다름 아니다. 동시에 민주당과 그 대권주자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데에도 부작위적으로 기여한 바가 크다 할 것이다.

바른정당은 감당키 버거운 모험을 선택했는지 모른다. 헌재에서 어떤 결론이 나오든 그게 바른정당의 정치적 활로를 확대시켜주는 동력을 공급할 것인지 불투명하다. 언제나 당 밖 정치권 인사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기 바쁜데 당 진로와 실존에 대한 결핍 현상과 무관치 않을 듯하다. 이 정당의 불가사의(不可思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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