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 김두환 展

자화상, Oil on Canvas, 91x73cm, 1963
자화상, Oil on Canvas, 91x73cm, 1963
대전 유성구 도룡동 모리스갤러리는 9일부터 15일까지 `설봉(雪峰) 김두환 展`을 연다.

화가 김두환(雪峰 金斗煥)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1913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그는 양정고보, 1935년 일본 가와바타 미술학교, 이어 동경제국미술학교를 졸업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후 1940년과 1948년, 당시 동화백화점 화랑에서 열린 그의 1·2회 개인전에 쏠린 당시 문화예술계의 관심을 고려한다면 예외적인 일이다. 일본미학의 거름망을 통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를 의식하더라도 우리 근대미술의 이입기에 정규 예술고등교육을 받은 화가들을 고희동, 김관영, 김찬영 등의 익히 알려진 소수의 화가들로 제한한다면 팔십 평생 화가이기를 고집했던 그의 예술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은 특별해 보인다.

전창곤 대전프랑스문화원장은 "김두환의 기법적 측면은 여전히 그의 학업과 관련된다"면서 "무사시노미술학교로 개칭되는 동경제국미술학교의 교풍이 장르나 경향을 무시한 자유로운 상상력의 발현을 장려했더라도 사물과 인체의 사실적인 재현이 4년 학업의 주요 교과과정이었다는 점은 이후 김두환 예술의 시금석이 됐다"고 평했다.

그의 특유의 거칠고 어두운 색채의 사용은 지도교수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시 자국의 열악한 경제·예술 환경에서 도피하여 몽마르트르에 정착한 초기 `에꼴 드 파리(ecole de paris·파리학파·제1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로 이주해 온 외국인 화가집단을 일컫는 말)` 경향의 화가들의 비극적 세계관과 암울한 색채들은 프랑스에서 수학했던 스승 다카바다께 다츠시로의 작품들을 통해, 그 자신이 망국민이었던 젊은 김두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음을 유추해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많은 평자들이 `향토예술`이라 규정하는 그의 작업들은 일제강점기 말기 조선 미술계에서 유행했던 향토소재주의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이렇게 샤갈, 수틴, 파스킨 같은 고향에서 뿌리 뽑힌 이주 작가들의 설움이, 나라를 잃은, 그리고 고향 예산을 그리워하는 청년 김두환의 감성과 조우한 결과물일 수 있는 것이다.

간간이 드러나는 점묘화의 차용이나 입체파적인 구성이 지속적일 수 없던 것은 젊은 날의 깊숙한 상흔에서 근거한 이 사실적이고 암울한 세계관이 그의 작품의 근저를 관통하기 때문이다. 해서 새로움만을 추구했던 우리 현대사의 질곡에서 구태의연(舊態依然)했던 그의 작품이 구태의연한 우리 미술계와 우리 모두의 문화의식에게 외면당했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정은 교수가 소장한 이번 전시작품들은 화가의 작품들 중에서도 특별하다. 오랜 교편생활을 마치고 적지 않은 기간 유럽에 체류하면서 현장에서 소묘된 이 과슈(gouache) 작품들은 그의 유화작품에서 상존하는 상념의 무게와 암울함을 거부한다. 일상의 무게를 벗고 밝은 태양 아래에서 그려진 이국적인 풍경과 인물들은 그 터치의 경쾌함과 색채의 화려함으로 학창시절이래 견지됐던 그의 예술 옆에 또 다른 감수성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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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 Mixed Media, 56x76cm, 1979
백마강, Mixed Media, 56x76cm, 1979

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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