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컷들이 옆에 오자 낮잠을 자고 있던 검은 갈기가 일어났다. 잠에서 깨어난 검은 갈기는 옆으로 한 줄이 되어 쳐들어오는 떠돌이 수컷들을 봤으나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직 잠이 덜 깬 듯한 눈으로 떠돌이 수컷들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웬일일까. 상대가 세 마리가 되기 때문에 겁을 먹은 것일까.

그럴만 했다. 떠돌이 수컷들은 모두 젊은 놈들이었으나 모두가 다 성장한 놈들이었으며 이미 한 판을 벌이려고 설치고 있었다. 1대3의 싸움이니 검은 갈기에게 승산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검은 갈기는 싸움을 포기하고 암컷과 새끼들을 떠돌이들에게 넘길 것일까.

그렇지 않았다. 떠돌이들이 공격권 안으로 들어오자 검은 갈기가 몸부림을 한 번 치더니 포효했다.

"이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쳐들어오느냐. 한 번 혼이 나겠느냐."

검은 갈기의 허세가 아니었다. 떠돌이들이 그대로 다가오자 검은 갈기는 땅을 차고 그리로 돌진했다. 자신만만하고 힘찬 돌진이었으며 검 은갈기는 맨 앞에서 오는 놈을 겨냥하고 도약했다.

검은 갈기는 공중으로 2m 높이로 날아가더니 앞발로 겨냥하고 있던 떠돌이의 대가리를 후려쳤다.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암컷들과 새끼를 지키기 위한 사자 무리 두목의 단호한 항전이었다.

"그래 그렇지. 그게 두목이 해야 할 일이야."

보고 있던 세실교수의 가슴이 후련했다.

일격을 맞은 떠돌이의 몸이 뒹굴었다.

몸은 성장했으나 아직 성장된 사자의 싸움 기법을 알지 못한 떠돌이 사자였다. 놈은 세 마리중의 두목이었으며 두목이 그렇게 맥없이 쓰러지자 다른 두 마리도 멈칫했다. 그리고 검은 갈기가 자기들에게도 덤벼들려고 하자 얼른 몸을 돌려 도망갔다. 쓰러진 놈도 일어나 도망가려고 했으나 검은 갈기는 그놈의 버릇을 고치려고 목덜미를 콱 물어 흔들었다. 목덜미가 찢어진 그놈은 피를 뿌리면서 도망갔으나 검은 갈기는 계속 추격했다.

검은 갈기는 100m쯤 떠돌이들을 추격했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아빠를 마중하는 암컷들과 새끼들을 환영의 몸짓으로 맞고 있었다.

검은 갈기는 그후부터는 좀 달라졌다. 떠돌이들 때문에 두목이 해야 할 의무를 뼈저리게 느낀 것 같았으며 그후부터는 낮잠을 자지 않고 자기의 영토를 돌아다니면서 경계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냥을 하러 나가는 암컷을 따라가 도와주기도 했다. 검은 갈기가 거느리고 있는 무리는 당분간 평화를 유지하면서 살아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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