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의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진료실로 들어온다. 얼굴만 봐서는 엄마가 환자인 것처럼 걱정스러운 모습이다. "얼마 전에 아이와 같이 목욕하면서 등을 보니 한쪽 등이 튀어나와 보여요. 동네 병원에 갔더니 척추측만증이라며 큰 병원으로 가서 수술하라고 해요."

아이는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이었다. 우선 등 검사를 해보니 엄마 말대로 한쪽 등이 튀어나와 보이고 검사를 진행하니 척추 뼈가 회전하여 한쪽 갈비뼈가 등 뒤로 튀어나와 보이는 현상인 늑골고가 확인되었다. 측만증은 허리가 옆으로 휘는 것이 아니라 척추 뼈 자체가 회전하여 발생하는 것으로 이로인한 외관상 변형이 보이는 질환이다. 각도를 측정하니 25도로 원인을 잘 모르는 특발성 측만증으로 진단되었다. 이 아이의 현 상태에서의 치료는 아직 아이의 성장이 남아 허리 보조기만 필요하고 일 년에 두세 번 정도의 정기 검사만으로도 충분함을 설명하였다. 잘 성장만 하면 평생 큰 지장 없이 살 수 있고. 수술은 필요 없는 상태였다. 설명을 듣고 난 엄마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임신했을 때 일을 많이 해서 아이의 척추가 잘못된 것 같아 마음이 아팠어요."

이 정도의 측만증은 엄마의 잘못이 아니며 의사들도 발생 원인을 잘 모른다. 해준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을 들으니 며칠간 엄마의 마음 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다. 아빠가 없어 엄마가 모든 경제적 부담을 안고 사니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하여 허리를 휘게 한 것 같다는 안타까운 소리만 반복한다.

그 다음 말은 나를 당황하게 만든다. "왜 그 의사는 수술을 하라고 했나요? 오진인가요?"

이건 어떻게 설명해야지? 나의 외래에서 가끔 겪는 일이다. 오진은 아니다. 많이 접해 본 환자가 아닐 때는 전문적인 진료를 위하여 경험이 많은 의사에게 의뢰하는 것이 기본이다. 측만증 수술의 경험이 없기에 수술을 할 수도 있다는 정도의 설명이었을 것이다. 보호자의 불만은 설명과 이해의 부족에서 온 것으로 판단된다. 똑같은 병이라도 환자마다 그 치료 방법은 다를 수 있지만 환자나 보호자는 의학적 지식이 부족하니 의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우리나라의 현실처럼 많은 환자를 한 의사가 치료하여야 할 때 충분하고 차분한 설명의 시간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의사의 말에 따라 환자의 고통과 걱정이 커질수도 있고 작아질 수도 있다는 점을 늘 생각해야 한다.

내일 수술이 예정인 환자가 입원하여 병실을 찾아갔다. 나이가 좀 드신 여성분으로 고혈압, 당뇨, 그리고 뇌혈관 질환까지 치료 중에 있는 분이신데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려 20m만 걸으면 주저앉아야 할 정도의 통증으로 허리 수술을 하셔야 할 분이다. 걱정이 얼굴 표정만 봐도 느껴진다. 척추관 협착증이라는 흔한 병이다. 대부분 수술은 필요 없지만 이 분처럼 걷기가 힘든 경우는 수술적 치료가 최선이다. 치과만 가도 겁이 나는 데 마취하고 또 흔하게 주위 분들로부터 허리수술하면 계속 고생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수술에 대한 공포`가 얼마나 크겠는가? 요사이 50대 이상의 환자분들은 거의 한 두개 정도의 내과적 질환이나 만성 질환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다. 글쓴이가 처음 교수가 되어 환자들을 볼 때와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경우는 척추 치료뿐만이 아니라 만성질환의 수술 전과 수술 후의 관리가 같이 시행되어야 한다. 혈압과 당뇨 등은 신경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환자에게 내일 수술에 대하여 수술과정과 수술 후의 합병증 등에 대하여 설명한다. 법적으로 의사의 설명의 의무를 떠나 이러한 환자와의 대화에서 서로의 믿음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인 것이고 이 또한 치료 과정 중 아주 중요한 단계이다.

간단한 디스크 수술부터 다소 과정이 복잡한 허리에 금속을 이용하여 고정하는 수술 등 여러 수술 방법에 따라서도 환자가 느끼는 부담감에 큰 차이가 있다. 대부분 수술 후 발생 가능한 문제점들은 수술 중에 발생하기보다는 수술 후 예상치 못하게 발생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신경 손상 등의 문제뿐만 아니라 수술 후 감염이나 심장, 뇌 그리고 폐의 발생 가능한 문제점까지 설명하여야 하고 요사이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이러한 발생 가능성은 높기 때문에 충분한 설명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다보면 환자나 보호자는 더 불안해 하기도 한다. 과연 어디까지 설명해야 하나? 어떻게 환자를 안정시킬까?

오랜 의사생활에서도 이 부분은 참 어렵다. 학교에서 배운 적도 없고. 또 말 한 마디에 희비를 느끼는 아픈 환자분들이 내 앞에 앉아 계시니 말이다.

환자들에게 치료 과정을 설명할 때 꼭 명심하는 것이 있다. 항상 수술을 해야 할 환자에게는 수술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뒤에 말한다. 일부 합병증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가능성이 적고, 의사를 신뢰하고 수술을 하면 허리를 펴고 잘 걸으실 수 있다는 식이다. 환자들은 늘 마지막 말에 더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나의 병원에는 많은 환자들이 다른 병원을 거쳐 온다. 그래서 "알고 계실 테지만" 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거의 대부분의 환자들이 많은 정보를 접하고 있고 그 정보가 올바르든, 잘못된 것이든 의료의 지식이 없는 환자의 책임이 아니니 바로 잡아 주어야 할 때가 있다. 그릇된 정보라고 환자를 나무라는 듯한 표현을 자제해야 하며 환자의 말을 이해해 주어야 한다. 치료 과정에서는 늘 문제가 생길 수 있고 환자가 치료에 만족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처음 환자를 대할 때의 의사로서의 말투와 자세가 올바르다면 환자와의 갈등을 줄일 수 있고 환자의 불안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보다 긍정적으로 환자에게 말을 하는 것이다. "그건 치료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은 의사로서의 직무를 포기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완치는 아니더라도 환자의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선택해서 치료하여야 한다. 그래야 환자 스스로도 질병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엔돌핀이 생기기 때문이다. Impossible(불가능한)이라는 단어도 조금 다르게 생각하면 I`m possible(나는 가능하다) 아닌가?

나의 손으로 수술하는 것만큼 환자에게 전하는 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중요한 치료 과정임을 느낀다. 내가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의 내용이 떠오른다.

"남의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을 주의 깊게 들어라." 양준영 대전베스트정형외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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