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이보다 좋은 말이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하루종일 번잡스러웠던 마음이 숲을 떠올리니 저절로 차분하게 가라앉네요. 내친 김에 숲길을 산책을 나섰습니다. 아직은 차가운 대기의 기운들이 전나무 숲을 지나면서 푸른 향기가 되어 얼굴을 칩니다. 정신이 번쩍 들고 흐트러졌던 생각들은 갈피를 잡아갑니다. 무엇보다도 몸과 마음이 맑아집니다. "모든 위대한 생각은 걷는 동안 나온다"는 니체의 말이 떠오릅니다. 제 생각들이 위대해지지는 못해도, 적어도 누추한 마음들을 걷어내는 숲 길 산책은 참 대단하다 싶습니다.

숲으로 들어서니 봄의 기운이 문턱을 넘을지를 망설이고 있는 듯 느껴졌습니다. 아직 눈길을 잡는 연두빛 새싹들은 만나지 못했지만, 보이지는 않아도 언 땅이 성글 성글 녹아가는 저 속에서 새싹들이 움찔거리고 있겠지요. 가만 가만 봄 숲을 채워 줄 봄꽃무리들을 상상해 봅니다. 양지바른 숲가에 노란 꽃잎을 반질 반질 반짝이며 피어날 복수초, 분홍빛 꽃잎들을 뒤로 제쳐가며 요염한 자태를 뽐 낼 얼레지, 순결한 백색꽃잎들이 하늘거릴 꿩의바람꽃, 보라빛 꽃들이 특별한 올망졸망 현호새 무리…. 봄 숲은 봄꽃들로 아름다운 꽃밭을 만들어 채워지겠지요. 숲정원입니다. 숲에 정원이 더해지니 정다운 행복감이 몰려옵니다.

그런데 모든 봄 숲이 이렇게 아름다운 봄꽃들로 채워지지는 않습니다. 여름도 가을도 마찬가지이지요. 식물들마다 특성이 모두 다르기는 하지만 꽃을 피워내는 많은 식물들은 숲이 우거지고 나면 햇볕을 가려 무리지어 살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금대봉이나 곰배령 같은 야생화 군락들로 유명한 곳도 대부분은 고산에 만들어진 초원지대입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이 우린 산을 바라보는 관점도 가만히 두는 보전과 파헤치는 개발로 양분해 편을 가르지만, 숲을 제대로 보전하고 가꾸어나가는 일은 숲의 모습만큼이나 다양할 수 있습니다. 크고 깊은 천연림을 가진 명산들은 정말 자연의 순리대로 놓아두는 것이 정답입니다. 한그루 한그루 심어 만든 숲들은 초기에 심은 나무의 밀도가 너무 높아 그대로 두면 나무들은 가늘고 삐죽이 자라고 그 아랜 죽은 가지들과 풀조차 살지 못하는 공간이 되어 버리기 쉬우니 적절하게 숲가꾸기를 통해 솎아내야 유용한 용재수가 커나가고 숲도 건강해집니다.

그런데 흔히들 무엇에 쓸지 모르는 나무들이 엉클어진 마을 가까운 뒷산은 어떻게 하면 좋을 까요? 여기에도 방법이 있습니다. 큰키나무 중심의 시선을 바꾸어 그 아래 살아가는 작은 키나무들이나 야생화군락을 주인공으로 두고 적절하게 상층을 가꾸어주면, 그리고 그 꽃으로 조금씩 유도해주는 길과 이야기가 생긴다면 접근조차 어려웠던, 버려두었던 잡목 숲은 말 그대로 아름다운 숲정원으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 전남 보성의 일림산이 가려진 나무덩굴정도로 잘 정리해 주어 눈에 보이는 모든 능선에 붉디 붉은 산철쭉으로 가득찬 명소를 만든 사례이구요, 정읍의 옥정호 소나무 숲은 보다 적극적으로 구절초를 심고 가꾸어 가을이 오면 그 꽃과 향기로 참으로 멋진 공간으로 온 국민들을 발길을 모으고 있답니다.

부디 부디 보전해야 하는 숲, 우리나라의 미래자원을 품은 생물다양성이 높은 산들은 자연에 맡겨두고, 우리 동네 버려졌던 숲에 눈길을 두어보십시오. 거창하게 돈을 투자하고 시설하고 공사하는 그런 사업대신, 뒷산 숲에 어떤 꽃들은 혹은 나무들을 도와줄까 들여다 보며 하나씩 하나씩 거두어 가면, 그 숲은 이내 정원이 되며, 마을 사람들이 소유하고 휴식하는 행복한 공간으로 바뀌어 갈 것이며, 때론 그 아름다운 숲정원은 우리 동네의 얼굴이 되고, 뭍사람들이 찾아드는 명소가 될 수도 있겠지요. 꽃들을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좀 더 모아지면 가난했던 산골마을엔 긴요한 소득으로 이어질지도 모릅니다. 마을의 특색을 가진 숲정원들이 전국방방곡곡 하나둘씩 들어나면, 우리 국민들은 계절마다 꽃을 찾아 가든투어를 떠나며 획일화 된 여행문화를 바꾸어 줄지도 모릅니다. 일본 홋카이도엔 이러한 숲정원의 좋은 사례들이 이미 만들어져 있습니다.

다행이 산림청에는 수목원에 이어 정원의 조성과 진흥을 돕는 법률도 만들어져 있습니다. 마을의 뒷 산만 생각해도 이렇게 행복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국토의 64%를 차지하는 산림을 함께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무궁한 미래를 그려낼 수 있을까요! 나무를 심고 가꾸어 푸른 국토를 만드는 일에 시작한 산림이 국민의 삶에 진실되게 기여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관심 그리고 격려를 소망해봅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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