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 되고 대학에 신입생이 입학하면서 캠퍼스는 활기가 넘치고 있다. 새학기는 봄과 같이 찾아왔고, 봄이 되면 마음에도 봄이 찾아 올 것만 같았다. 그런데 막상 봄이 되고 나니 마음의 봄은 아직 찾아오지 않고 동토의 차가운 바람만이 세차게 몰아치고 있다. 그러면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구절을 자꾸만 떠올리게 된다.

이상화 시인이 1926년 `개벽`지에 발표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는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과 빼앗긴 조국에 대한 애정과 절실함이 담긴 시라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안다. 그런데 90여 년이 지난 2017년 봄에 이상화 시인의 이 시가 마음속에서 다시 우러나오는 것은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2017년 봄은 나라를 빼앗긴 것도 아니고, 이상 기온으로 봄이 찾아오지 않은 것도 아니다. 계절은 분명 봄인데 아직 우리에게 봄은 찾아오지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아직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도, 그리고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에 대한 재판도 진행중이어서 어떤 결과와 판결이 나올지는 분명하지 않다. 비록 탄핵심판과 재판의 결과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지난해부터 불거져 나온 일련의 상황들은 검찰수사와 특검의 수사를 통해 나타난 정황에 대해서 `아니 이럴 수가?`라는 통탄이 나온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위임 받은 주권을 국민을 위해 사용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권력과 그 주변에 있는 일부 권력자들을 위해 사용했고 대통령 주변의 일부 권력자들은 그 권력을 남용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누구나가 다 아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은 이상화 시인이 울부짖고 있는 `빼앗긴 들`을 다시 찾은 대한민국에서 국민의 주권이 대통령과 그 주변의 일부에게 `빼앗긴 주권`의 의미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만 같다. 정말 많이 양보해서 우리의 주권이 `빼앗긴 주권`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작년부터 나오는 국정농단의 사례들을 보면 우리의 주권은 일부에 의해 `농락당한 주권`이 아닐 수가 없다. 상황이 이러하니 봄은 봄인데 봄이 아닌 봄이고, 봄이 되었음에도 자꾸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 구절이 떠오르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대통령과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권력을 위임받은 권력자는 자기 자신보다는 국민을 먼저 생각해야 하고 국민으로부터 위임 받은 권력을 국민을 위해 사용하고, 그 권력의 원천인 국민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 원칙은 적어도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지켜지지 않았고, 그래서 국민의 주권은 그냥 헌법에만 존재하는 주권이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권력이라는 것이 권력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권력이 나오고 그 권력을 국민을 대신해서 행사하는 것이 대통령과 권력자인데 말이다.

과연 누가 우리의 주권을 빼앗고 농락했는가?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의 주권을 빼앗고 농락할 때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우리의 주권을 지키고 우리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무엇을 했어야 했고 또 어떻게 해야만 했던가? 이런 의문들을 갖게 되는 것은 봄이 오는 길목에서 지난 겨울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새로운 놀람과 실망으로 답답했던 가슴에 과연 봄이 올 수나 있을지 걱정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얼마 후면 어찌 되었던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한 결과가 나오게 된다. 항간에서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오기 전에 대통령이 하야 한다는 소리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 대한 결정이 어떻게 나오던, 그리고 또 혹시라도 그 전에 대통령이 하야하던지 간에 농락당한 국민의 주권을 회복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것이다.

나라를 빼앗긴 1926년이 아닌 2017년 봄이 오는 길목에서 이상화 시인의 시 첫 구절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함께 마지막 구절인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라는 대목이 자꾸만 생각나는 것은 분명히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박광기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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