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조류독감(AI)관련 취재를 하다 한 지자체 방역담당 공무원과 연락을 시도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한참을 울리던 내선 전화는 결국 대답 없이 끊기고 말았다. 의아한 마음에 홍보팀에 연락을 해봤다. 홍보팀 관계자는 "어제 조류독감이 터져서 현장에 나가있다. 아마 오늘 중으로는 통화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홍보팀 관계자의 말대로 해당 지자체의 방역팀은 그날 퇴근시간 전까지도 현장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전날 밤 AI 발생 보고가 들어왔다고 하니 일부는 보고 즉시, 일부는 새벽같이 현장에 출동했을 것이다. 오전에만 수 천 마리가 넘는 가금류를 살처분 처리한 만큼 밤샘작업은 기본으로 했을테다. 보상관련 서류작업까지 마치다 보면 이날처럼 늦은 시간에도 복귀하지 못하는 경우가 우습게 발생한다.

그나마 연락이 가능했던 다른 지자체의 방역담당자들을 취재했을 때, 이들의 목소리 역시 힘에 부쳐보였다. 5-6명에 불과한 인원으로 몇 달 동안 이어온 비상대기는 남아있던 기운마저 앗아갔다. 없는 살림에 업무 분담은 불가능이나 다름없다고 이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흔히 공무원들을 가리켜 공복(公僕)이라 부른다. 국가, 혹은 사회의 심부름꾼이라는 의미다. 재난 현장을 비롯한 각종 업무 현장에는 늘 `뒤처리`를 담당하는 심부름꾼들이 있다. 방역을 예로 들면 심부름꾼 혼자 바이러스 검사, 살처분, 보상업무, 대책회의 등을 담당한다. 그럼에도 일부 농장주에게 당연스럽게 질타당하고 혼이 난다. 국가를 대리하는 사람 중에서도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고, `내가 낸 세금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탓이다.

민원인과 실랑이를 하는 일이야 심부름꾼의 숙명으로 받아들인다고 치자. 문제는 이들이 원활하게 일할 수 있는 업무 체계가 형성이 됐는지의 여부, 공복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 얼마만큼 갖춰 졌느냐의 여부다. 한 방역담당 공무원이 밝힌 "업무 과중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방역업무 담당자가 현저히 줄어들 것 같다"는 우려는 현재 업무 환경이 얼마나 부실한 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다는 자부심은 이들을 움직이는 동력이다. 하지만 지원, 혹은 증원 없는 과중한 업무는 공복으로서의 기능을 훼손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뭔 지는 자명하지만, 아직 해법조차 모르고 있다면 심각한 문제다. 정부는 언제까지 일선 공무원들을 공노(公奴)로만 볼 것인가. 충남취재본부 전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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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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