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오디세이] 김홍갑 성신여대 석좌교수

중앙정부의 대표적 인사통(人事通)으로 불린 김홍갑 성신여대 석좌교수의 변신은 놀랍다. 공직을 떠난 뒤 한국지방재정공제회 이사장으로 경영 능력을 발휘하는가 싶더니 우즈베키스탄에서 대통령 직속 국립행정아카데미 부총장으로 일하며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개혁을 주도했다. 귀국한 뒤 곧바로 대학 강단에 서서 `통일한국의 미래`를 강의하고 있으니 다역의 삶을 달리고 있다고나 할까. 김 석좌교수는 "학생들에게 통독(統獨)의 역사를 강의하며 남·북한의 통일 정책과 향후 통일방안을 소개하고, 통일된 한국의 밝은 청사진을 제시해주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충청의 젊은이들이 공직에 진출해 충청도 정신인 겸손과 배려, 공정과 중립의 가치를 국가 발전에 구현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사와 관련해서는 조선의 과거제도를 거론하며 지역 안배와 균형을 강조했고,"한류와 행정을 결합하면 국제사회에 훨씬 큰 파급효과를 낼 것"이라고 조언했다.

대담=송신용 서울지사장

-근황이 궁금하다.

"좀 바쁘게 살고 있다. 우송대학교에서 강의하던 중 갑작스레 우즈베키스탄 정부 요청으로 1년 근무했다. 지난해 8월 말 귀국해서는 성신여대 석좌교수로 임명됐다. 또 숙명여대 객원교수로서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대학교의 기능과 구조 및 학사운영 방안을 획기적으로 개편하기 위한 제도개선 분야 컨설팅을 하고 있다."

-정책 자문 활동은 하지 않나?

"인사혁신처 정책자문위원으로 새로운 공무원제도 설계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충청권 대학에서 하는 특강이나 세미나에도 자주 간다. 작으나마 후학 양성에 도움을 주고 싶은 생각이다."

-대학에서는 무엇을 강의하나?

"공직에서는 주로 인사·조직관리 같은 행정부의 구조와 운영을 개선하는 업무를 관장했었다. 대학에서는 다소 다른 글로벌 교양분야 강의를 한다. 성신여대에서 `통일한국의 미래`를 맡고 있다. 오히려 신선한 시각으로 흥미롭게 진행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려 달라.

"한반도의 통일정책은 개인적으로 애착이 많은 주제였다. 강의를 하면서 동·서독의 통일과정과 통일전략, 통일 뒤 명암을 체계적으로 살펴볼 기회를 가졌다. 또 한반도의 통일과 관련된 국내외 여러 자료들을 마주하면서 피상적으로 이해했거나 잘못 알았던 내용을 수정할 수 있었다. 통독의 역사를 알려주고 남·북한의 통일 정책과 향후 통일방안을 소개한다. 특히 통일 한국의 밝은 청사진을 제시해주고 희망을 주는 내용을 전달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강의 이외에 주안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이론적인 내용과 사실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주제를 완벽하게 해부하기에 2% 부족하다는 점을 종종 느꼈다. 그래서 가능하면 실제 사업을 추진하는 주체라는 입장을 가정한 뒤 다양한 관점에서 상황을 분석해 보자고 했다. 또 스테이크 홀더(stakeholder·이해관계자) 등을 포함해 종합적으로 살펴보면서 3인칭이 아닌 1인칭 입장에서 사안을 대해 보도록 시도했다. 다행히 학생들이 실제 사안을 직접 담당하는 주체적인 입장에서 주제를 파악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치며 책임감이 배가 되고 이해도가 높아졌다는 말을 들었다."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직속 국립행정아카데미 부총장으로 일했는데 어떤 활동을 했는지?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카리모프 대통령은 상당한 친한파로 알려져 있었다. 개혁을 위해 선진국 중 한국형 모델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대통령실이 요청하는 정부개혁 과제 컨설팅과 국립행정아카데미 교육과정 혁신이라는 두 가지 역할을 맡았다. 정부개혁으로는 공무원제도 설계와 장·차관, 시장, 대학총장 등 고위직 선발 및 일반 공무원 채용 방안, 기타 부패 방지 대책을 자문했다. 국립행정아카데미는 우리나라의 KDI(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과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을 합친 성격을 띠고 있다. 교육혁신을 위해 석사과정 커리큘럼을 전공별로 세분화했고, 평가모델을 도입했다. 특히 KOICA(한국국제협력단)와 협력해 2017년부터 3년간 ODA(공적개발원조) 자금 300만 달러를 투입해 공무원의 역량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마련한 게 보람이다."

-한국의 행정 시스템에 대한 외국의 평가가 후한 것 같다. 자평을 한다면.

"말씀하신대로다. 동남아를 포함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한국 행정제도를 도입했거나 도입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베트남이나 미얀마의 예를 들어볼까. 한국이 과거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에서 잘사는 국가로 변신한 모멘텀을 우리 행정제도의 선진화에서 찾고 있다. 특히 새마을운동 같은 지역개발과 전자정부, 공무원 역량개발 사업의 평가가 좋은 편이다."

-행정 한류를 더 확산시킬 방안이 없을까?

"우즈베키스탄 현지인들이 K-팝이나 K-드라마에 열광해 인상적이었다. 한류와 행정 중 강점이 있는 분야를 잘 매칭한다면 파급효과가 훨씬 커질 것이다. 아울러 행정한류를 전파할 계획을 갖고 있는 나라들의 중견·고위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초청·연수사업이 한국 이미지를 높여주고 그 나라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고 본다."

-다양한 분야에서 근무했다. 기억나는 일이 많을 것 같다.

"하하. 고시과장 때 고생 좀 했다. 국가고시가 있을 때면 출제위원과 공무원·인쇄요원 등 대규모 시험단과 함께 20여 일을 감방처럼 외부와 차단된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부대꼈다. 또 주미대사관 참사관 재임 시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우리 정부로부터 정부개혁 포럼에 참석할 주요인사로 클린턴 전 대통령 같은 비중 있는 인물을 섭외하라는 요청을 받고 접촉했는데 많은 사례금 요구가 문제였다. 결국 세계시민단체 대표로 대체했다."

-`인사통`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인사와 관련해 유념해야 할 게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인사가 만사`라면서도 역대 어느 정부도 인사 문제에 관한 한 그다지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 듯해 안타깝다. 인사는 채용단계에서는 적소적재 원칙을 지키되 채용한 인사에게는 신뢰를 부여하고 권한을 부여해야 된다고 믿는다. 좋아하는 글귀가 `立賢無方 惟才是用`(입현무방 유재시용)이다. 인재를 뽑을 때는 혈연·지연·학연을 물리치고 오직 능력만 보라는 얘기다. 또 `疑人不用 用人不疑(의인불용 용인불의)`라는 말이 있다. 일단 사람을 쓰면 완전히 믿고 맡겨야 한다."

-정부부처 인사를 놓고 지역 차별 논란이 끊이지 않는 데.

"우리나라의 경우 지역적 배타성이나 학연 등에 기대는 심리가 없지 않기에 조선시대 과거제도의 묘미를 현대적으로 살려주는 게 한 방법이라고 본다. 과거제도는 지역적 대표성을 감안해 시·도별 인구비례로 1차 시험을 치렀고, 2차 시험에서 오로지 능력과 성적으로 뽑았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 입문을 권유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전히 선을 긋고 있나?

"중앙정부에서 오래 근무했고, 대전시부시장을 역임해서인지 여러 차례 입문하라는 권유를 받은 걸 부인하지 않겠다. 다만, 현실적으로 내가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정치라기보다는 정책을 설계하고 관리하는 분야이기에 경계를 벗어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공직을 꿈꾸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충청의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충청은 애국충절의 고장이라는 자랑스런 전통을 갖고 있다. 기미년 독립선언에 참여한 33인 중 충청 출신이 8명이나 된다. 이렇듯 과거 충청도 선열들은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역사의 현장에 참여했다. 시대상황이 많이 변했지만 공직은 여전히 공익을 지키고 애국이라는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다. 충청의 뜻있는 많은 젊은 인재들이 적극적으로 공직에 진출해 고향 선열들의 애국심을 이어받고 충청도 정신인 겸손과 배려, 공정과 중립의 가치를 국가의 발전에 구현하기를 기대한다."

사진설명=김홍갑 성신여대 석좌교수는 "공직은 공익을 지키고 애국이라는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라며 충청 젊은이들의 적극적인 진출을 기대했다.

신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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