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서 전후반을 나누는 재미있는 기준이 하나 있다. 후보들의 공약과 현안에 대한 입장이 명확히 구분되면 전반전, 변별력이 사라지기 시작하면 후반전이다. 선거 초반에는 각기 다른 가치관으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 한 쪽에서 슬그머니 방향을 바꾸거나, 아예 논쟁 자체를 회피한다. 득표에 불리하다고 판단되는 후보 또는 정치세력이 선거전략 차원에서 궤도를 수정하기 때문이다. 왜 말이 바뀌었느냐 하는 추궁은 무의미하다. 말 잘하는 정치인, 선거판에서 잔뼈가 굵은 전략가들에게 이 정도 명분을 만드는 것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다.

이번 대선에서 이러한 공식이 작동하지 않는 키워드가 하나 나타났다. 연정론이다. 이슈화된 지 한 달 가까이 지났지만, 3·1절을 맞이한 여야 대선주자들의 메시지에도 여전히 찬반론이 팽팽히 녹아 있을 정도다.

연정의 사전적 의미는 의원내각제에서의 연합정부를 말하는 것이나, 현재 한국정치에서 회자되는 연정은 효율적 국정운영을 위한 모든 협력 행위를 의미한다. 2개 이상의 정당이 공동으로 내각을 구성하는 연립정부, 의회에서 정책이나 의안별로 정당끼리 협력하는 정책연합 등도 포함된다. 유럽 대다수 국가들이 다양한 국민 목소리를 수용하면서도 안정적 내각을 이끌어가는 유용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과 달리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권력 쟁취를 위한 명분 없는 `야합`으로 활용되다 보니 부정적 인식이 팽배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연정은 의석 부족으로 의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유용한 정부운영 방식이다. 특히 한국 국회의 경우 국회선진화법이 존재하는 한 연정과 협치는 이제 필수다. 다수당의 횡포를 막기 위한 이 법이 실제로는 소수파가 반대하면 국회 및 정부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상황이다. 수시로 법 개정이 논의되나, 이 역시 소수당의 협조를 얻지 못하면 불가능하다.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차기 대통령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과정도 없이 곧바로 행정부의 수반을 맡아야 한다. 더욱이 누가 대통령이 되도, 여소야대의 다당체제다. 당장 정부조직을 꾸려야 하고, 국무총리 및 장·차관을 임명해야 하는데,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야당의 협조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촛불민심을 통해 드러난 개혁과제를 입법화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새로운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경제 및 안보 분야의 산적한 현안을 해소해야 하는데, 협치가 안 되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같은 필요성이 아니더라도 더 이상 승자독식주의는 안 된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절감한 한국 사회에서는 권력을 나누고 정파 간, 당과 행정부 간 소통을 확장시킬 수 있는 연정과 협치, 그 자체가 국가 운영의 새로운 틀로 자리매김 해야 한다.

그렇다면 연정의 대상과 범위는 누가, 언제, 어떻게 정해야 할까. 분명한 것은 차기 대통령만의 의무나 권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국회 지도자들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여야 지도부가 상호 충분한 대화와 정치력을 발휘해 연정의 기본 틀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연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정당과도 협치 파트너로서의 기본적 신뢰는 구축해야 한다. 인수위도 없이 곧바로 정부를 출범시켜야 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연정에 대한 밑 그림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공약이나 현안에 대한 후보별 입장이 유사해지는 현상을 꼭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 후보간 변별력이 사라졌다는 것은 치열한 검증 과정을 거쳐 민심에 의해 가르마가 타진 것이고, 위정자 또한 이러한 민심을 제대로 받드는데 동의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연정 자체의 가치는 차치하더라도 대통령 탄핵을 놓고 전 국민이 찬반 논란에 휩싸여 극단적 대립양상을 보이는 작금의 현실을 감안하면, 여야를 떠나 연정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어 가는 노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차기 정부에 연정은 필수이며,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안정감을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라는 데 동의한다면, 여야는 정쟁의 도구로 삼을 게 아니라, 하루라도 빨리 머리를 맞대고 뜻을 모아가야 하지 않을까. 송충원 서울지사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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