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한 이타주의자

선의와 열정에만 이끌려 무턱대고 실천하는 무분별한 선행은 그 기대와 달리 무익한 경우가 많다. 도움이 전혀 되지 않거나 오히려 해가 되는 사례도 주변에서 쉽게 발견 할 수 있다.

아프리카의 물 부족 국가에 회전놀이 기구와 펌프기능을 결합시킨 식수 펌프 `플레이펌프`를 보급하려 했던 `플레이펌프스인터내셔널`은 선의와 열정만 앞세운 사업 운영으로 결국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으며 폐업했다.

펌프 동력 공급에 아이들의 `노동`이 동원되면서 사고가 속출했고 관리 체계도 허술해 자체적인 유지보수도 불가능했다. 결국 플레이펌프는 마을의 흉물로 전락했고, 각종 폐해가 드러나자 여론이 등을 돌렸다. 그렇게 플레이펌프 미국 지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냉정한 이타주의자`는 선의와 열정에만 의존한 경솔한 이타주의는 오히려 해악을 끼치기 쉽다고 말한다. 따뜻한 가슴(이타심)에 차가운 머리(데이터와 이성)가 결합돼야 만이 선한 의도가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

저자는 전 세계적적으로 광범위한 사업을 전개하는 월드비전, 옥스팜, 유니세프 등 거대 자선단체도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보건사업에 비해 비용은 더 많이 들고 효율은 더 떨어진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에도 재해구호에 전력을 기울이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개인 차원의 선행도 효과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공정무역 제품 구매도, 노동착취 제품 불매도, 온실가스 감축 노력도 소용이 없다는 수치가 넘쳐난다. 일상적으로 실천하는 이타적 행위가 실제로 세상에 득이 되는지 실이 되는지 냉정하게 따져 봐야 하는 이유다.

지난 2011년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현지 관측 이래 네 번째로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고 1년 전인 2010년에는 아이티에서 지진이 발생해 약 28만 채의 건물이 붕괴되는 등 대규모 피해가 났다. 두 지진 소식은 언론에 크게 보도됐고 구호단체들도 일제히 모금에 나서 각각 약 50억 달러에 달하는 국제원조금을 지원받았다.

두 재해 모두 지진으로 큰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은 유사했다. 하지만 사상자 수(일본은 사후 사망자 포함 1만 5000명, 아이티는 15만 명)와 대응자원 보유량에는 극적인 차이가 있었다. 규모가 더 큰 재해와 빈국에서 발생한 재해에 더 많은 구호금이 전달되는 게 합리적인 대응일 테지만, 규모와 심각성이 아니라 정서적 호소력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널리 알려져 있는지에 따라 돈이 분배되는 게 현실이다.

사실 시야를 넓혀 보면 매일 도호쿠 지진 사망자 수보다 많은 1만 8000명의 아이들이 결핵 등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규모로 보면 아이티, 도호쿠 지진보다 심각한 재난이지만 일본 지진 당시 기부금이 사망자 1명 당 33만 달러였던 데 비하면 빈곤으로 인한 사망자 1명당 구제비용으로 투입된 금액은 평균 1만 5000달러로 보잘것없다. 효율을 따져 보면 재해구호에 기부하는 것보다 빈곤단체에 기부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냉정한 판단이 앞서야만 비로소 우리의 선행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때이다.박영문 기자

윌리엄 맥어스킬 지음·전미영 옮김/ 부키/ 312쪽/ 1만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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