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1절 아침이었다. 띠링 하고 울린 핸드폰을 열어 보니 연구소 독서모임 동료가 보낸 메시지였다. `일주일 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이 있다. 역사적인 사건인데 아직 아무도 알파고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이 없다. 에트리에서 세미나를 열어보지 않겠냐`는 내용이었다. 오호라, 재미있는 기획이다 싶었다.

서로 가능한 날짜를 맞춰보니 다음날밖에 없었다. 당장 만나기로 했다. 인공지능과 바둑이라는 오묘한 조합을 다루어야 하니 작전이 필요했다. 각자 준비할 파트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서 새벽까지 자료를 만들었다.

다음날 페이스북과 연구소 게시판에 공지를 올렸다. 사실 연구소에서 연구 외적인 세미나를 전체게시판에 공지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업무 시간의 10%를 개인 프로젝트에 활용할 수 있는 제도가 있긴 하지만, `딴짓`을 공개적으로 하려니 눈치가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알파고가 궁금해서 공부했고, 더 잘 아는 누군가 나타나서 얘기해 주었으면 했다.

3시간 전에 기습적으로 올린 공지를 보고 많은 분들이 오셨다. 이웃한 연구소 원장님도 오셨고 대덕넷에서 취재도 왔다. 나는 `알파고는 어떤 바둑을 둘까`라는 제목으로 세미나를 준비했다. 알파고가 바둑을 어떻게 두는지 기술적인 부분을 충분히 파악할 시간이 없었다. 딥마인드가 공개한 다섯 판의 기보를 보고 알파고의 바둑이 어떠한지에 대해서만 분석할 수 있었을 뿐이다. 알파고의 강점과 약점, 기풍을 분석했다.

당시의 알파고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인공지능의 수준은 뛰어넘은 상태였지만, 이세돌 9단과의 승부는 안 될 것으로 보였다. 바둑을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세돌 9단의 승리를 예상했다. 유럽 챔피언 판 후이 2단과의 기보에서 알파고는 사활 문제에서 큰 실수가 있었다. 뭐, 그땐 그랬다. 이미 옛날 얘기다. 지금의 알파고는 세계적인 프로 기사들과 붙어서 60전 전승을 기록하고 있다.

가볍게 시작한 `기습세미나`였는데 세미나 자료를 웹에 올리면서 일이 커졌다. 기고 요청이 들어와서 알파고를 분석하는 글을 밤새 써야 했고, 일간지 2면에 기사가 실렸고, 블로그에 올린 글은 일주일 동안 10만 관객을 모집했으며, 녹화 전날 밤에 전화를 주신 방송 PD의 설득으로 KBS 스페셜 `인공지능, 인간을 이기다` 편에 출연하여 근사한 스튜디오에서 존경하는 서봉수 9단과 마주앉아 알파고가 승리한 역사적인 1국을 지켜보았고, 알파고 사태가 진정이 될 무렵에는 일간지 두 면을 할애하여 `알파고의 바둑 정복기`를 실었다. 이 모든 일이 휴일 아침에 받은 문자메시지 한 통에서 시작된 것이다. 덕분에 나는 알파고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평생을 오로지 바둑에 바쳐온 승부사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었고, 충격과 흥분의 소용돌이 중심에서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언제나 미래 예측은 어렵다. 서울 한복판에 나타난 알파고가 일주일 동안 이슈를 점령하고 전국민이 이세돌 9단을 간절히 응원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특정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들의 미래 예측이 오히려 터무니없이 빗나가기도 한다. 전 세계에 필요한 컴퓨터가 다섯 대 정도일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이 IBM 회장이었던가.

이제는 알파고의 후예들이 더 무섭다. 일본에서 개발한 `딥젠고`도 조치훈 9단에게 1승을 거두었다. 인공지능이 작곡도 한다. 인공바흐, 인공비틀즈가 나왔다. 포커 치는 인공지능 `리브라투스`는 20일 동안 열린 포커 대회에서 세계 최고의 포커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챔피언이 되었다. `똥패`를 들고도 `블러핑`을 하는데 포커페이스가 일품이다. 이 놀라운 사건들이 모두 지난 1년 동안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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