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쇼스키 형제감독이 만든 영화 `매트릭스`는 조작된 현실을 다룬다. 영화의 배경은 1999년이다. 그러나 1999년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생체에너지를 자신의 동력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꾸며낸 조작된 현실이고, 실재는 2199년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조작된 1999년을 현실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영화는 실재는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보다 더 실재처럼 인식되는 현실을 다루고 있다. 영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진짜 현실인지 가짜 현실인지를 묻는다.

가짜가 진짜로 둔갑한 세상은 영화 `매트릭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짜뉴스가 진짜뉴스와 섞여서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가짜뉴스는 유언비어나 정보지(지라시) 뉴스와는 다르다. 유언비어는 정보가 통제되는 상황에서 확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보지 뉴스는 증권 정보지와 같이 경제적 이득이나 연예인 뉴스와 같이 사실 이면에 다른 그 무엇이 있을 것이라는 욕망에서 은밀히 퍼져나간다. 반면 가짜뉴스는 소셜 미디어나 포탈을 통해서 정치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는 의도적으로 조작된 뉴스다.

가짜뉴스의 대표적 진원지는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미디어다. 작년 미국 대통령 선거기간 동안 페이스북에 공유된 가짜 뉴스의 양이 진짜 뉴스의 양보다 많았고, 선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힐러리 클린턴이 IS에 무기를 판매했다거나 피자가게 뒷방에서 아동 성매매를 했다는 등 수많은 가짜뉴스가 만들어졌다. 도널드 트럼프도 가짜 뉴스가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고 연일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가짜 뉴스와 도널드 트럼트가 말하는 가짜 뉴스는 차원이 다르다. 힐러리 클린턴은 소셜 미디어가 생산한 완전히 조작된 가짜 뉴스에 곤욕을 치렀지만, 도널드 트럼트가 공격하는 가짜 뉴스의 생산자는 뉴욕타임즈나 CNN과 같은 공식적인 언론사이기 때문이다.

가짜 뉴스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사실과 관계없이 완전히 조작한 뉴스, 즉 `페이크`(fake) 뉴스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사건을 의도적으로 편집하거나 문맥을 삭제해서 비방과 흑색선전을 하는 `나쁜` 뉴스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대통령 선거참여를 포기하면서 가짜 뉴스를 비난했는데, 이것은 후자의 경우다. 퇴주잔 보도는 나쁜 뉴스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가 말하는 가짜 뉴스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언론사는 공인에 대한 환경감시 기능과 비판적 기능을 수행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과연 도널드 트럼프가 러시아와 밀원관계나 성추문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언론사로서는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의혹이다.

가짜 뉴스들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말의 질서`가 무너졌다는 것이고, 정치적 갈등과 대립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우리의 사회상황이 가짜 뉴스가 퍼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있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가짜 뉴스가 양산된다고 해서 포털이나 소셜 미디어만 비난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기존 언론사의 게이트키핑 과정에 어느 정도 문제가 있었고, 공유와 참여를 전제로 하는 1인 미디어 시대의 환경을 거부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소셜 미디어 서비스나 포털은 가짜 뉴스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팩트 체크 시스템 구축이나 진위여부를 판단하는 모바일 앱도 개발 중이다. 이와 같은 해결책들이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미지수다.

존 밀턴은 기념비적인 저서 `아레오파지티카`(1644)에서 거짓과 진리가 경쟁하면 필연적으로 진리가 승리한다는 주장을 폈다. 사상의 공개시장이 열리면 자기조정능력을 통해서 거짓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존 밀턴은 신이 인간에게 이성을 빌려준 것은 양심의 명령에 따라 거짓과 진리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선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는 거짓이 진실처럼 위장하고, 진실은 거짓으로 덮여있는 `뉴스의 매트릭스` 시대에 살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우리를 구해줄 구원자 네오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댈 것은 존 밀턴의 주장처럼 냉정한 이성적 판단밖에 없다. 우리가 꼼꼼히 현실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주창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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