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도리어 설표의 편을 들고 있었다.

"힘내라 설표야. 조금만 더 빨리 달려."

사람들은 높이가 8000m나 되는 히말라야의 고산에서 홀로 추위에 떨고 굶주리면서 살고 있는 설표에게 더 동정이 가는 것 같았다.

설표와 사모아의 거리가 몇 십m로 단축되었다. 그 거리가 10m로 단축되었을 때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사모아의 마지막 방법을 내놓았다.

날듯 뛰어가던 사모아가 일순 정지했는데 그 앞에 계곡으로 떨어지는 낭떠러지가 있었다. 거의 직각인 암벽이 병풍처럼 서 있었으며 그 높이가 50m나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사모아는 그 낭떠러지에서 밑으로 뛰어내렸다. 놀라운 행동이었으며 자살행위 같기도 했다.

설표와 사모아의 달리기는 거기서 끝난 것 같았으나 그렇지 않았다.

사모아는 무모하게 낭떠러지에서 낙하한 것 같았으나 그건 낙하가 아니었다. 사모아는 뛰어내리면서 가끔 앞발로 병풍 같은 암벽을 콱 콱 찼다. 암벽을 타면서 낙하 속도를 줄이려는 행동이었고 몸의 중심을 잡으려는 행동이기도 했다. 사모아의 강철같이 강하고 고무처럼 부드러운 발바닥이 그걸 가능케 했다.

사모아가 그렇게 몸의 중심을 잡으면서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리자 뒤따라오던 설표로 주저없이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렸다. 사모아가 그랬듯이 설표도 자살행위를 한 것이 아니었다. 사모아는 강철같이 튼튼한 발을 갖고있었으나 설표는 고무공처럼 탄력이 있는 몸을 갖고 있었다. 설표는 절벽 위에서 긴 꼬리를 쭉 뻗었고 네 다리를 옆으로 벌려 자기 몸에 낙하산 같은 부력(浮力)을 붙였다.

8000m 높이의 바위산에서 살고 있는 동물의 능력이었다.

설표는 그렇게 천천히 떨어지면서 방금 계곡 밑에 안착한 사모아의 등 위에 떨어졌다. 기가 막히는 묘기였다.

보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환성을 지르면서 감탄했다.

사모아가 치명적인 충격을 받았다. 사모아는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해 쓰러졌으나 그래도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사모아는 등에 올라타 있는 설표를 뿌리치려고 했으나 설표는 이미 사모아의 목덜미에 발톱을 찍어넣고 아가리로 동맥을 끊어 놓고 있었다. 피가 분수처럼 뿌려졌고 설표도 사모아도 모두 피투성이가 되었다. 계곡도 피바다가 되고 있었다. 참혹한 광경이었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