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상에서 여혐이라 번역되는 미소지니(misogyny)가 큰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몇몇 문인들은 이 개념을 통해 이제까지 남자로서 누렸던 기득권과 그 속에서 알게 모르게 행해 온 여혐적 작품 활동에 대해 반성문을 쓰기도 했다. 반면에 더러 어떤 이들은 이를 두고 이제까지 남자로서의 기득권을 누려온 자들이 대세에 편승해서 여자들의 인기를 끌려고 한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새로 부각되는 개념, 새로운 사고방식이 생기면 이를 통해 새롭게 제기되는 가치를 생각하고 그렇지 못했던 과거를 반성하는 일은 좋은 일이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것은 어찌 보면 양식 있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폭력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괴롭히고 그의 재산을 약탈하는 행위가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당연한 과정이라고 여겨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폭력이라는 개념이 존재할 때 내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폭력이 되지 않을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인간들은 보다 평화로운 새로운 관계를 지향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회가 진보하고 인간성의 발전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이런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개념들은 항상 이상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소지니라는 말은 지극히 바람직한 남녀 간의 평등을 그 지향점으로 두고 있다. 그리고 그에 도달하는 과정은 갈등과 싸움을 거쳐야 하는 지난하고 험난한 길일 것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한 사람 안에서도 이런 갈등이 상존하고 다양한 생각과 행동이 착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이 개념이 가질 수 있는 이상으로서의 가치를 판단기준으로 하여 모든 문화를 단죄하고 쓰레기로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야만이고 문명파괴가 아닌가 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신경림의 `농무`라는 유명한 시 중에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두고"라는 구절이 나온다. 미소지니라고 충분히 비판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울분과 저항의 장에서조차 여성을 몰아내려는 시인의 잘못된 여성관이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고 이런 작품을 쓴 시인은 지금이라도 모든 여성들 앞에서 자기반성을 해야 할까?

문학을 포함한 예술은 가치를 가치로 말하지 않는다. 그 가치에 도달하는 갈등과 아이러니를 표현하기도 하고 그 가치를 구현하지 못하는 현실의 모습을 리얼하게 보이는 것으로 그 가치의 필요성을 의식, 무의식적으로 말해주기도 하다. 위의 `농무`가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는 집어치우고 집사람을 데리고 신명나게 농무를 추는 것으로 표현되었다면 더 훌륭한 작품이 되었을까? 만약 그랬다면 윤리적으로는 더 바람직할 수 있지만 당대 현실의 핍진함에서는 더 멀어졌을 것이다. 하나의 윤리적 가치만으로 예술을 평가하는 것은 많은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여혐은 민감성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해 그것의 문제점을 민감하게 느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 여혐의 문제가 바로 그렇다고 생각된다. 어떤 한 사례가 여혐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어떤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느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강의실에서 청중의 대부분이 남자들이고 여자 한 사람이 있을 때 그 여자분을 지칭하면서 "저기 있는 여자분 말씀해 보세요." 이렇게 말했을 때 어떤 여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들을 수 있지만 민감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기분 나빠할 수도 있다. 그분이 여성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마치 층간 소음 문제와 같은 것이기도 하다. 민감한 사람은 조그만 소음에도 견디지 못하고 위층에 항의한다. 반면에 또 어떤 사람들은 위에서 아이들이 뛰놀아도 별로 거슬리지 않는다. 아이들이 많아 좋겠다고 부러운 생각이 먼저 들 뿐이다. 이 문제를 누가 옳으냐 그르냐를 따질 성격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예민한 사람들은 층간 소음 내는 위층 사람이 없어져야 할 공공의 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나의 예민함이 다른 사람에게는 엄청 불편한 폭력이 될 수도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는 서로 노력해야 할 배려의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들은 여성을 대할 때 내가 혹시 상대방에게 젠더적 차별을 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반성하고 배려해야 한다. 물론 그게 완전하지 않을 수 있다. 상대방과 내가 그 점에 대해 감수성의 민감도가 다르기 때문이고 남자로서 내가 모를 또 다른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성들도 그 점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나의 지나친 예민함이 자칫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고 동지와 지지자를 적으로 만들 수도 있음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황정산 시인, 대전대학교 H-LAC 교양교육부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