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다, 커튼을 열자 창유리에 꽉 찬 빛들이 부서진다

그늘 안으로 쏟아지는 빛살들, 홀씨의 방,

예리하게 파인 책상의 생채기를 하얗게 일으켜 세우고

부러진 심장의 연필을 깎았다

거꾸로 꽂힌 책, 점들의 틈이 꼬여진 수직과 곡선

일그러진 이름표마다 천천히 온기가 모여들었다

습기 찬 계단을 타고 한낮의 먹구름들이 우르르 몰려 왔다

하루치의 빛을 모으는 시간, 초록이 되자 꽃 빛이 되자 빨강이 되자

찰진 햇볕이 들어선 씨방 속에서도 자신의 색을 복사해내지 못하는

젖은 이끼들에게 밑줄을 긋게 하였다

식지 않는 미열에 굵은 식은땀을 깨뜨리면서

반쯤 눈을 뜨고 지켜보는 일이 잦았다

간혹, 홀씨 하나가 검은색 꽃 문을 열기도 하였다

그림자들이 돌아간 저녁이면 부은 발등 아래로 붉은 허기가 몰려들었다

빛의 분별력은 점점 흐릿해져 갔다

어둠의 깊이는 햇볕의 양식이 되어주지 않았다

이 시는 선명한 듯 흐릿한 듯 수많은 이미지가 돌출한다. 그것들 하나로 모여 방안을 가득 채운다. 빛이 일깨우는 느낌을 인상파로 읽다가도 뜻을 새기려 철학적 명제 떠올려야 한다. 그렇게 이 시는 몇 개의 복선을 깔고 있다. 그게 그늘을 자르는 시간일지. 홀씨의 방, 적요의 방에는 언제나 물결치는 빛의 파동들이 살아있다. 일상의 모든 것은 커튼을 열며 비롯된다. 그러므로 진실은 가려진 커튼을 열 때 새로운 빛으로 다가오는 법. 빛의 각도, 빛의 강도 그리고 빛의 그늘에 의해 물상은 자신의 주소를 온몸에 새긴다. 커튼을 열면서 바깥의 빛이 내부로 침입하면 물상은 자신을 버리고 외부의 빛으로 갈아입는다. 어쩌면 우리는 그걸 본래의 색으로 알고 살아가는지 모른다.

생은 때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온 빛으로 인해 책상 위에 예리하게 파인 생채기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거꾸로 꽂힌 책, 점들의 틈이 꼬여진 수직과 곡선의 속내도 거짓 없이 드러낸다. 그렇게 빛은 모든 실체의 그늘을 보여주는 것. 빛의 그늘, 그늘의 빛을 돌올하게 새겨주는 것. 그게 빛의 역할일 것. 이 시에는 그늘에 갇힌 불빛 하나가 아름다운 시간으로 서서히 자라고 있다. 시인·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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