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대학교에는 공과대학이나 사회과학대학처럼 우리에게 낯익은 단과대학뿐만 아니라 혜화리버럴아츠칼리지(약칭 H-LAC)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의 단과대학이 있다. 이는 미국에서 활성화되어 있는 리버럴아츠칼리지 시스템을 모델로, 대전대의 특성과 현실에 맞도록 변형한 형태의 `대학 속의 대학`으로서 2015년 국내 대학 가운데 최초로 설립되었다.

현재 미국에는 약 200개의 리버럴아츠칼리지가 있다. 혁신의 아이콘인 스티브 잡스가 1년 동안 다니다 중퇴한 곳으로 유명한 리드칼리지도 명문 리버럴아츠칼리지 가운데 하나이다. 각자 개성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를 모델로 하여 일본과 유럽에도 다양한 형태의 리버럴아츠칼리지가 설립되어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리버럴아츠칼리지에서는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기초 학문 분야의 기본기를 다진다. 이처럼 기본기를 다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급변하는 미래사회에는 한 가지 직업만을 가지고 평생을 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미래학자들은 앞으로 대학을 졸업하는 사람들은 평생 대여섯 개 이상의 직종에 종사하게 될 것이라 전망한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식견과 이러한 식견을 가능케 하는 보편적 통찰력과 소통능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이처럼 급변하는 사회에 하나의 전공 분야만 공부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한 투자이다.

인간에 대한 근본적 이해와 소통능력, 사회에 대한 참여의식, 그리고 자연에 대한 융·복합적 식견이 뒷받침된다면 졸업 후 어느 분야에 종사하게 되든지 능동적으로 적응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리버럴아츠칼리지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는 상당수의 전문가들이 공감하고 있다. 나아가 상당수의 대학들이 저마다 현실에 걸맞은 형태의 독자적인 한국형 리버럴아츠칼리지를 설립하고자 계획하는 단계에까지 들어서 있다. 요컨대 "왜 리버럴아츠칼리지인가"와 "무엇을 만들 것인가?"에 대해 우리는 매우 많은 고민을 해왔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리버럴아츠칼리지에서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세인트존스칼리지는 `고전 100권 읽기 프로그램`으로 유명하다. 4년 내내 고전 100권을 읽으면서 교수와 학생이 서로 토론하고 글을 쓰는 것이 학업의 중심이다. 최고의 리버럴아츠칼리지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포모나칼리지는 글로벌 시민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하기 위한 다양한 외국어 프로그램과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MIT나 칼텍과 어깨를 견주는 하비 머드 칼리지는 대학원이 없는 학부 공과대학으로서 양질의 공학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가 이들 대학에서 본받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고전 100권 프로그램인가? 교환학생 프로그램인가? 공학 프로그램인가? 아니다. 우리가 이들 칼리지에서 본받아야 할 것은 이런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아닌 교육의 방법이다. 명문 리버럴아츠칼리지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토론이 교육의 중심이라는 점이다.

세인트존스칼리지의 고전수업에서는 교수가 전혀 강의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려 하지도 않는다. 대신 학생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토론을 할 뿐이다. 그래서 교수(professor) 대신 튜터(tutor)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윌리엄스칼리지에는 튜토리얼(tutorial)이라는 이름의 개인수업이 있다. 학생 2명과 교수 1명이 짝을 이뤄 글을 쓰고 서로 논평하면서 토론하는 과정이다. 포모나칼리지 역시 모든 교육과정에서 지식 전달 위주의 강의 대신 토론이 중심이다.

리버럴아츠칼리지가 아무리 혁신적인 교육과정과 커리큘럼을 개발한다 해도 교육방법이 지식 습득 위주의 낡은 방식이라면 성공하기 어렵다. 반면 교육과정이나 커리큘럼이 다소 미흡하더라도 토론 중심의 교육방법이라면 오히려 성공을 기대할 만하다. 학생 중심의 소통형 수업을 통해서는 교육과정과 커리큘럼의 개선이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교육방법이 일방향이라면 아무리 좋은 과정과 프로그램이라 하더라도 학생들을 변화시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의 리버럴아츠칼리지도 이제 `가르치지 않는 가르침`에 대해 더욱 고민해야 한다. 채석용 대전대학교 H-LAC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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