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가 싫으면 눈을 감으면 된다. 그러면 듣기 싫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듣기 싫다고 해서 귀를 닫을 수는 없다. 그러나 듣지 않을 수는 있다.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을 수동적 듣기능력 즉 `청력(hearing)`이라 하고 주의를 집중해서 능동적으로 듣는 것을 `청취(listening)`라 한다. 청력은 수동적 감각이고 청취는 능동적 행동이다. `소 귀에 경 읽기`라는 속담은 소리는 듣지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흘려듣는 것을 의미하는 말일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수동적으로 소리가 들린다 해도 우리의 귀는 능동적 청취를 하지 않음으로 듣지 않을 수 있다. 청취방어인 셈이다.

청취를 방해하는 주된 요인으로는 감정경험이 있다. 어떤 소리와 관련되어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하게 되면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와 청취하지 않게 된다. 달팽이관 기저막 위에는 외유모 세포와 내유모 세포라는 청각세포가 있다. 이 청각세포들은 특정주파수에 특화되어 있다. 감정에 문제가 생겨 편도체에서 특정 소리를 위험정보로 인식하면 대뇌에는 비상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그 결과 청각피질에서 외유모 세포에 제 기능을 발휘하지 말라고 신호를 보내게 된다. 그러면 외유모세포의 민감도가 줄어들어 소음과 정보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인 `선택적 청취력`이 상실된다. 즉 청각정보가 소음으로 들리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뇌는 원심성으로 작용해 청각을 통해 들려오는 구심성 소리정보를 의도적으로 차단하거나 제거할 수 있다. 우리의 안전을 위해 뇌가 방어하는 것이다. 청취방어는 일종의 보호기제라 할 수 있다. 부모님의 말씀이 아무리 옳고 아이를 위한 것이라 해도 아이들에게 이미 부정적인 감정으로 기억되어 있어 자신의 안전을 위해 듣지 않기로 했다면 아이들에게는 지겨운 잔소리요 소음으로 들릴 뿐이다.

우리의 뇌는 학습기관이다. 그러나 감정의 방해를 받은 청취방어는 학습과 의사소통에 커다란 장애를 가져오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청취방어를 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일시적이지 않고 지속적이라면 청각정보에 상당한 왜곡을 가져올 것이다. 그렇기에 감정의 방해를 받지 않고 편견 없이 잘 듣는 것이 학습과 의사소통의 개선을 위한 열쇠라 할 수 있다. 잘 들어야 알 수 있고, 잘 들어야 믿을 수 있고, 잘 들어야 올바로 소통할 수 있다. 이상열 두뇌학습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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