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암살 사건에 북한 외교관이 연루됐다는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칼리드 말레이시아 경찰청장은 어제 기자회견을 열고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 현광성과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이 사건에 연루됐다고 밝혔다. 북한의 지휘를 받고 있는 재외공관 외교관이 관여했다는 것은 북한 정권이 사건의 배후라는 직접적인 증거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는 곧 이 사건이 북한 정권 차원에서 저질러진 테러라는 의미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그동안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를 믿을 수 없다"며 생떼를 쓰고 궤변을 일삼아 온 북한으로선 국제사회의 비난과 함께 외교적으로도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게 됐다.

그동안 확인되지 않았던 암살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과 범행수법도 속속 드러났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동남아 여성 2명 뒤에는 외교관과 고려항공 직원 등 최소한 북한국적 남성 8명이 있었다고 밝혔다. 북한인들은 검거된 리정철을 빼고 범행직후 모두 달아났다. 알려진 것과 달리 여성들은 맨손에 독극물을 묻혀 김정남의 얼굴을 차례로 문질렀고 걸린 시간은 불과 2.33초였다. 범행 전 수차례에 걸친 연습을 했고 범행 후 손을 씻고 도주했다는 것이다. 예행연습과 범행 후 잠적하는 치밀함 등 말레이시아 경찰의 발표를 지켜보면 조직적이고 잔혹한 `계획된 암살`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강철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는 지난 20일 말레이시아 경찰이 "암살 사건에 북한국적 용의자가 더 있다"고 밝히자 적반하장 태도를 보였다. "말레이시아가 한국 등 적대세력과 야합해 북한을 궁지에 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엔 북 외교관까지 가담한 사실을 공개했으니 어떻게 나올지는 두고 볼 일이다. 말레이시아 국민들 사이에선 북한과의 관계단절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한다. 자국의 경찰 수사까지 비난하는 북한의 행태에 국민감정이 악화된 탓이다. 40년 넘게 우호관계를 유지해온 말레이시아가 돌아선다면 다른 동남아 국가들도 북한과의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김정남 암살이 북한의 소행으로 드러난 만큼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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