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마을에 내려간 김인태는 즉시 마을 일꾼들을 모아 마을 앞마당에 넓은 모임장소를 지었다. 건평이 70평이나 되는 모임터 였는데 그건 굶주린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음식을 만들고 그걸 함께 먹을 수 있는 모임터 였고 그 한쪽 구석에서는 아이들도 음식을 먹으면서 공부도 할 수 있었다.

김인태는 삼림에 들어가서 모임터의 기둥과 도리보 서까래 등으로 쓰일 나무들을 잘라냈다. 김인태는 그걸로 모임터의 뼈대를 세우는 한편 그 모임터 안에 큰 솥들을 걸어놓고 저번에 잡았던 멧돼지고기와 삼림 밑 땅속에서 파낸 나무뿌리들을 푹 삶았다.

그는 또한 그곳에서 그런 일을 하면서 그 안에서 갈대와 잡풀 등으로 거적과 멍석과 거적을 짜고 새끼를 꼬았다. 온 마을 사람들이 총동원된 일들이었음으로 시작한지 일주일만에 잡초로 짠 거적으로 덮힌 모임터가 지어졌고 바닥에는 두꺼운 멍석이 깔렸다. 모임터는 눈바람이 차단되었고 따뜻했다. 그 안에 걸린 솥에서 나는 연기로 난방이 되었던 것이다.

며칠동안이나 삶긴 멧돼지 고기는 뼈의 골수까지 우러났고 주먹만큼 잘려 푹 삶긴 나무뿌리들도 부드럽게 익었다.

소문을 듣고 나온 함경감사는 그 음식을 직접 시식해보고 춘곤기를 넘길 수 있는 음식이라고 칭찬했다. 함경감사는 김인태가 그때 한 일을 상세히 기록하여 춘곤기에 처한 다른 마을에서도 실시하도록 지시했다.

그때 김인태가 지은 마을 모임터는 춘곤기를 넘길 임시의 건물이었으나 함경감사는 춘곤기가 지난 다음에도 그 건물을 헐지말고 그대로 남겨두라고 지시했다. 다른 마을들이 본받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함경감사는 잡초마을에 유배되었던 김인태가 한 일을 모두 기록하여 중앙정부에 보고했는데 그 보고서는 중앙정부에서도 상세히 검토되었다. 그 보고서는 지방마을의 실정들이 밝히고있었고 뒤떨어진 지방마을을 구제할 방법도 암시되고 있었다.

잡초마을은 김인태가 그곳에서 구제사업을 시작한지 반년만에 완전히 달라졌다. 춘곤기에 들어가 누워있던 사람들이 일어났고 굶주림에 누렇게 부어 올랐던 마을사람들의 얼굴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이들도 역시 굶주림에서 벗어나 힘차게 뛰어 놀고 있었다.

함경감사의 보고서는 지방 마을의 구게뿐만이 아니라 중앙정부에서 실시하고 있는 유배제도에 대해서도 개선책을 건의하고 있었다. 유배수 김인태가 한 것처럼 지식인들의 지방유배를 그 마을의 개발에 공식적으로 관여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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