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보면 어떤 장면에서 또는 어떤 스토리 전개에서 마음이 불편해질 때가 있다. 뉴스를 볼 때도 그렇고 종종 운전할 때도 그렇다. 무언가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을 보거나 부당한 경우, 사람들은 각자가 가진 도덕적, 법적 기준에 거스르는 현상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다. 이렇듯 `마음이 불편해 지는` 이유에는 앞서 말한 각자가 가진 도덕적, 법적 기준 외에도 종교적 신념의 차이, 가치관의 차이, 세대의 차이, 지식의 차이, 빈부의 차이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원인들이 있을 것이다. `생각이나 입장이 모든 면에서 똑같은 사람은 없을 것이므로 우리나라 5000만 명의 국민들은 어쩌면 5000만 개 이상의 마음속 불편함을 가질 수 있다`라는 얘기도 된다.

그러나 우리는 살면서 위와 같은 `차이`는 단지 `다름`에 지나지 않으므로 `불편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웃으로 포용하며 더불어 살아가야 함을 배우고 또 미덕으로 삼는다. 프랑스의 `똘레랑스` 문화와 미국의 `인종용광로` 라는 표현도 그런 의미에서 한 국가의 통합과 번영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진다.

인간이 추구하는 3대 욕심의 대상이 돈과 권력과 명예라고 하는데, 이 세 가지의 공통된 특징이 내 마음대로, 때로는 타인을 억누르고 무엇인가를 얻어내고 향유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는 도구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라면 당연히 또는 어쩔 수 없이 감수하고 살아야 하는 `마음이 불편해지는` 일을 최소화하고 내 맘대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 그것이 돈과 권력과 명예라는 도구의 힘이라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있으면 한마디로 `세상 살기 편하다`는 말이 된다. 우리가 종종 접하는 `갑질`이라는 행태도 상대에 대한 존중없이 안하무인(眼下無人)할 수 있는 힘 있는 자들의 소치다. 돈과 권력으로 세상 살기 편한 국가는 정신문화가 제대로 성숙하지 않았는데 돈이면 다 된다는 천민자본주의가 득세하거나 정치적으로 민주주의가 확립되지 않은 후진국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위와 같은 돈과 권력, 그리고 명예에 대한 해석이 다름 아닌 작금의 우리나라 국민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바가 아닐까. 필자는 이러한 돈과 권력, 명예에 대한 정의가 불편하다. 경제력으로 금수저와 흙수저가 나뉘는 말도 불편하고, 요사이 벌어진 국정농단처럼 부정한 권력의 전횡도 불편하며, 학벌지상주의나 직업에 따른 변형된 형태의 명예로 사람의 가치가 규정되어지는 것도 지극히 불편하다. 필자가 생각하는 대한민국은 더 이상 천민자본주의가 판치는 정치후진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지난 겨우내 촛불을 들었던 우리 국민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은, 누구든지 능력에 따라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얻어야 하며 출발선과 기회가 평등한 나라이고, 공직자는 퍼블릭 서번트일 뿐이지 더 이상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자가 아니다. 명예라는 것도 특별한 직업이나 명함이 아닌,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자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뜻일 뿐 소위 `꼰대`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반발심에다 측은한 거부감까지 느끼고 있지 않은가.

한 사회에서 용인되어야 하는 `다름`과 청산돼야 하는 `적폐`는 명백히 구분된다. 촛불을 든 이들의 주장과 태극기를 흔드는 이들이 각론에서 생각이 다를 수는 있더라도, 내 가족이 살아야 하고 후세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은 같을 것이다. 돈과 권력, 비뚤어진 명예로 소수의 사람들만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닌 대다수의 일반 국민들이 행복하고 살기좋은 나라, 돈 없고 빽이 없더라도 처자식과 함께 따듯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대한민국을 원하는 것이다. 좌가 되었든 우가 되었든, 세대가 다르든 우리는 공동운명체에 속해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음 달이면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이 예정돼 있고, 그 결과에 따라 꽃피는 오 월에 대통령선거라는 중대사를 치뤄야 한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가치관에 따라 따로 들었던 촛불과 태극기를 함께 들고 통합과 번영의 새로운 대한민국을 구상해야 한다. 신상훈 법무법인 명경 대표 변호사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