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제1조 제1항의 선언이다. 또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한다. 이 명제들은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평등과 정의를 진작하려는 이들에게 특별하게 애용되는 문장이다. 이 명제의 함축이 민주주의의 본질을 가장 잘 대변한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공화국`에서 우리가 떠올리는 실체적인 의미는 어떤 것일까? 군림하는 왕을 두지 않고 국민(民)이 주인(主) 노릇을 하는 세상, 국민이 주도적으로 나랏일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나라, 나의 권익과 자유를 거침없이 추구할 수 있는 세상을 의미하는 것일까?

민주공화국! 실로 가슴 뛰게 하는 말이다. 민주공화국은 한민족이 일찍이 체험해보지 못했던 특별한 정체(政體)다. 오로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그런데 이 민주공화국의 의미와 성공조건을 우리는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민주정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인들이 창안한 데모크라티아(Democratia)에 그 뿌리를 둔다. 공화정(Res Publica)의 연원은 고대 로마에 있다. 우리는 데모크라티아에서 따온 `데모크라시`(Democracy)를 `민주주의`로 새긴다. 하지만 사실 데모크라시는 `민중이 통치하는 정치체제`를 의미할 뿐 `주의`(ism)를 내포한 것은 아니므로 잘못된 번역이다. 여기에서 개념의 혼동이 초래되었다.

아테네인들은 민회, 즉 에클레시아(eklesia)에서 국가의 대소사를 결정했다. 민중은 입법자였고, 동시에 행정가이자 법관이었다. 이렇게 민중이 나랏일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공동체와 개개인은 매우 긴밀한 일체감을 가질 수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는 현대국가의 느슨한 공동체와 달랐다. 그들의 시민의식이 남달랐던 배경이다.

하지만 민중의 권력이 비대해지면서 정치가들은 민중의 환심을 사지 않고는 나라를 이끌 수가 없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Politika)에서 질타한 대로, 민중이 `다수로 구성된 독재자`로 폭주했기 때문이다. 우중(愚衆)의 결의들은 자주 법을 무시했다. 또 선동가(demagogue)들이 민중이 법 위에 군림하도록 선동하는 민주정의 치명적 약점도 노정되었다.

이를 극복하고자 고안된 정체가 고대 로마의 공화정이었다. 로마인들은 자주 방종으로 흐르던 아테네의 민주정을 답습하지 않고, 귀족들로 구성된 원로원과 집정관, 민중이 참여하는 민회와 호민관이 상호 견제와 균형의 원리 속에 국가를 운영하는 정체를 고안했다. 공화정은 다양한 계층적 이해를 대변하는 사람들이 동등하게 권력을 공유하는 체제다.

오늘날 민주공화국은 아테네 민주정과 로마 공화정의 취지를 모두 살린 혼합정의 국가로 이해해야 된다. 민주공화국을 성공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로마의 공화주의자 키케로가 `국가론`에서 강조했듯, `법에 대한 동의와 유익의 공유`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따라서 민주공화국을 거론할 때는 민중을 규율할 법률에 대한 복종과 공익 추구의 동의를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의미로 새겨야 한다. 이게 `공화`다. 특히 민주공화국에서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직접 나오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도 직시해야 한다. 엄밀히 말하면 국민의 총의로 제정된 `법률`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를 도외시 할 때 민중의 폭주가 발생한다.

민주공화국은 `민주`와 `공화`의 양 날개로 난다. 이 둘이 조화롭게 추구되어야만 존립할 수 있는 나라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대다수 식자와 대중은 민주공화국을 국민이 주인임을 강조하는 `민주`의 뜻으로만 오해하고 되뇐다. 이런 표피적 인식은 불법과 선동을 일삼으면서 민주공화국을 외치는 위선과 기만에 빠지는 사람들을 오도한다. 우리가 `민주`는 넘치지만 `공화`는 실종된 현실을 직면하게 된 이유다. 민주공화국은 국민들이 공동체의 유익 앞에 각자의 이기를 내려놓는 선공후사의 정신, 법에 만인이 복종하는 준법의 정신 위에만 지을 수 있는 전당이다. 이제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만들어가야 할 때다.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기획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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