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진 교수의 시네마 수프] 닥터 스트레인지

창작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종종 부딪히게 되는 문제들, 고민에 빠지게 되는 어떤 지점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오늘은 두 가지를 얘기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창작활동과 창작자의 경험의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짧으나마 학생들의 삶에 있었던 강렬한, 자주는 아픈 경험들을 창작의 우물로 만들어 새로운 이야기들을 길어 올리게 하는 것만큼, 혹은 더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는 부분은 그다지 강렬한 경험을 갖지 못했던 창작의 욕구를 가진 학생들의 창의의 우물을 찾아내는 일입니다.

또 다른 하나의 고민은 창작자의 사회활동에 관한 것입니다. 동시에 생계활동에 관한 것입니다. 가끔은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창작자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게 그리고 내가 아끼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줄 용기도 필요하다고 말해줍니다.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의 두 작가(데이비드 베일즈, 테드 올랜드)는 "의학도의 98퍼센트가 졸업 후 5년 간 의학시술을 하지 않았다면 크게 문제시되겠지만, 예술 전공자의 98퍼센트가 초기에 전공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 되어 버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술 분야의 학업 중도 이탈률은 높지 않지만 학업을 마침과 동시에 창작활동도 막을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창작 전공자들이 그러하듯이, 학업 과정 중에 두드러지는 성과나 비평계의 호평을 얻어내지 못한 채로 사회에 나오게 되고 생계를 꾸려가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때로는 그보다도 더 무거운 사회가 용인하는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했다는 시선과 평가에 짓눌리게 됩니다.

성공의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창작자들은 `창작의 불안`에 시달립니다. 늘 그러듯이, 머릿속으로 계획하고 시작할 때 훌륭하고 재미있게 생각되던 아이디어들이 수많은 세부 디테일들이 구성된 현실의 창작물로 옮겨지면서 예상과는 달리 흡족한 결과물로 나오지 못하고 있는 듯한 창작 과정의 불안, 그리고 궁극적으로 욕망하면서도 동시에 부담일 수밖에 없는 창작물에 대한 평가와 비평에 대한 불안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창작자가 감수해야 할 창작의 불안의 무게를 더하는 것은 예술은 "자기표현"이라는 관점이 예술을 개인적인 것으로 만들고 작품에 대한 평가가 그 창작자 개인에 대한 평가가 되어져 그 압박과 작업에 대한 지지의 부재가 크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창작자의 개성적인 시그너처를 남기는 것에 대한 강박이 아닌 더 큰 대의에 봉사하던 사명 혹은 소명의 예술의 시기에는 창작자가 지지받는 안정감과 의지할 부분이 더 컸다는 얘기입니다.

지난해 마블 스튜디오의 비주얼 결정판이라는 강력한 소문에 한걸음에 극장으로 달려가 관람을 하게 했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저명한 외과의사 스티븐 스트레인지가 불의의 사고로 인해 두 손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고 자신이 삶과 명성을 되찾고자 고군분투하지만 결국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명성에 오점이 남을 우려가 있다면 환자의 동의와 요구에 반하여 수술을 회피하는 과거의 자신처럼 명성만을 좇는 의사들에 분노하며 대체의학의 가능성을 찾아 나선 닥터 스트레인지가 대체의학이 아닌 다차원 초능력의 세계로 입문하게 되어 수퍼히어로로 탄생하는 예고된 시리즈의 시작편입니다.

주인공이 구도의 길에 나서게 되어 깨달음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는 인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은 스타워즈, 메이트릭스 등 많은 작품들에서 반복되는 흔한 구조이기는 합니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갖고 있는 앞의 영화들과의 작은 변별점은 운명적인 `선택된 자`의 색깔보다는 우리 모두와 같이 삶의 고난 안에서 몸부림치며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지극히 개인적 욕망의 구도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그를 깨달음으로 이끄는 말은 바로 "이것은 너에 대한 것이 아니다"입니다.

영화는 소문대로 충분히 눈 호강을 시켜줍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의 계보를 잇는 굽어지고 접혀지는 도시의 이미지들 한 발짝 더 나아가 다중차원의 시공간 중첩을 무결점의 완벽한 디자인으로 놀랍도록 현란한 비주얼을 선사합니다. 비록 좀 더 잘 활용될 수 있었던 많은 이야기적 장치들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클라이맥스를 선사하지 못한 채 이야기가 막을 내리는 연출적 아쉬움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이 작품 안에 현대 영상의 흐름의 커다란 줄기가 자라고 있는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다양한 감독들의 작품들이 징검다리처럼 놓여 놀라운 속도의 도약으로 영상표현의 지평을 넓혀가는 할리우드의 집단적 진화가 느껴집니다. 꼭 그것이 시대의 혹은 영화사의 한 획을 긋는 작품이 아니어도,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의 여운을 선사하기에는 역부족인 점이 보이는 작품이어도, 충분히 성공적인 어느 지점을 디뎠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다시 돌아 앞에 언급한 학생들을 가르치며 고민하게 되는 첫 번째 지점으로 돌아옵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한 성장과정을 거쳐 온 것을 창작자로서의 열등감으로 품기 시작하는 창작 전공의 학생들에게도 같은 문장을 던져봅니다. "이것은 너에 대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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