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당 체제로 재편된 이후 처음 열린 2월 임시국회에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집권여당인 자유한국당이 야당 단독으로 환노위에서 청문회 안건을 통과시킨 것을 날치기라고 비난하며 16개 상임위 일정을 전면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당장 상임위는 교착상태로 빠져들었고 여야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쁘다. 뭔가 달라질 것으로 기대했던 국민들은 당리당략과 무한대치의 구태가 재연되고 있음을 목도하게 된 셈이다.

한국당은 표면적으로 야권이 환노위에서 MBC 노조탄압과 이랜드 임금체불, 삼성전자 산업재해 관련 청문회 개최를 결정한 것을 문제 삼고 있다. 국회의장과 4당 원내대표가 생산적 국회를 합의했는데 야권이 안건을 날치기함으로써 의회 독재를 획책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갑작스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의 피살 사건을 감안하여 국방위와 정보위에는 참여할 방침이라고 한다. 한국당의 상임위 보이콧으로 비롯된 여야의 대치는 대통령 탄핵과 대선국면의 기싸움 양상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어 파행 장기화가 우려된다.

사실 이번 2월 국회는 개회 전부터 많은 관심을 끌었다. 4당 체제는 법안처리에 있어 어려움을 가중시킬 요인으로 꼽혔다. 하지만 탄핵심판 여파로 부정부패와 반칙 등을 방지할 개혁입법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담아낼 환경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기대가 더 높았다. 또한 조기 대선국면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대선 어젠다 선점 차원의 입법 경쟁도 가세해 경제민주화나 민생관련 법안 처리도 가속화할 것으로 예견됐다.

그러나 상임위 가동 첫날부터 파열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14일 8개 상임위의 문을 열었지만 각 당의 입장은 번번이 충돌했고, 어제는 한국당의 보이콧 선언으로 대부분의 상임위가 파행을 겪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처리키로 한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사외이사 규제 등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확대,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은 당장 제동이 걸렸다.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는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설치법 등의 개혁입법은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반대까지 겹쳐 더욱 불투명하게 됐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한국당의 반발은 예고된 듯하다. 새누리당에서 당명을 바꾸는 등 모든 것을 새롭게 하겠다는 각오를 밝힌 지 불과 며칠 만에 국회 일정 거부라는 초강수를 둔 것은 계산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당은 인명진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정치·정당·정책 등 3정 혁신을 강조하며 리모델링에 나서고 있다. 친박세력에 대한 인적청산이 미흡하다는 비판을 받지만 보수의 적통을 놓고 바른정당과 경쟁을 하는 마당에 강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야권에게 하나씩 밀리기 시작하면 탄핵 및 대선국면에서 한없이 쪼그라들 것은 뻔하다. 이런 위기감은 환노위에서 풀어야 할 문제를 모든 상임위로 전선을 확대하는 동력으로 작용했으리라 여겨진다.

바른정당의 어정쩡한 태도 역시 국회 표류에 일조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면서 새누리당에서 나와 개혁적 보수를 표방하고 있는 바른정당은 야당이지만 범여권으로 분류되면서 다른 3당과 확연한 정책의 차별화를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비록 자유한국당의 상임위 보이콧에 동조하지 않고 있으나 선거연령 하향이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등에 대해서는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여야는 서로 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국당은 국회파행의 책임을 야권에 돌리며 청문회 안건 무효를 주장하고 있고, 민주당은 개혁법안을 가로막기 위한 한국당의 꼼수라며 맞받아치고 있다.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사이 안보와 경제 불안은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일부 대선주자들이 협치나 대연정을 부르짖는 것도 이같은 국회의 파행으로 인한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함이다. 각 당이 당장은 탄핵과 조기대선에 화력을 집중할 수밖에 없겠으나 국회 정상화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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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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