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 `재심`이 개봉했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은 2000년 8월 10일 당시 범인으로 지목되었던 15세의 소년에게는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순간이다. 소년은 처음에 그저 목격자에 지나지 않았다. 목격자로 참고인 조사를 받으라는 호출을 받고 소년이 끌려간 곳은 경찰서가 아닌 여관이었다. 소년은 여관에서 경찰관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고 그렇게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로 살인범이 되었다. 소년은 경찰의 강압수사로 허위자백한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그 외침은 공허했다. 소년은 수인번호를 가슴에 새기고 10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이 사건은 재심이 개시돼 지난해 11월 17일 광주고등법원에서 무죄판결이 선고됐지만 소년의 가슴에 박힌 응어리는 결코 인생에서 쉬이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은 최근 재심전문변호사로 일반인에게도 두루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가 담당한 사건으로 세간의 관심을 받았던 사건이다. 영화 `재심`의 김태윤 감독은 살인범으로 몰렸던 당사자가 영화를 통해 한풀이를 하면 좋겠다는 심정을 밝혔다. 그렇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당사자는 한을 풀 수 있을까. 무죄 선고만이 해피엔딩이고 그것으로 충분한 것일까. 사과는 제대로 이루어진 것일까.

`사과`를 뜻하는 영어 단어인 `apology`는 그리스어`apo(떨어지다)`와 `logos(말)`가 결합돼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말`이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사과는 고의나 실수로 잘못을 저지른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최소한의 대가를 치르는 과정이다. 그 과정은 4가지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두 번째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마지막으로 보상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형사 재심사건의 무죄 선고는 사과의 시작일 뿐이다.

재판정에 입장한 변호인과 피고인(피의자)은 재판장에게 목례를 올린다. 이는 판사 개인에게 하는 인사가 아니라 법복이 상징하는 사법부의 권한을 존중하고 신뢰한다는 진심어린 바람을 담은 행동이다. 그만큼 사법부는 권한 이상의 책임이 있다. 수사를 하고 재판을 진행했던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통렬히 인식하고 왜 오판에 이르게 됐는지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무엇보다 사건에 관여했던 당사자들이 피해자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건네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사법부의 오판으로 세월을 잃어버린 피해자에게 해야 할 최소한의 배려이자 예의이다. 사건은 무죄로 종결돼 다시 사건번호로 기록되겠지만 당사자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안고 살아가야 할 또 다른 시간들이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공개사과의 기술`이라는 책의 저자 바티스텔라 교수는 좋은 사과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예로 들었다. 1932년 미국 보건부는 흑인들을 대상으로 매독연구를 진행하면서 그들에게 매독 감염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치료도 하지 않아, 그 과정에서 100여명이 매독으로 사망했다. 클린턴은 1997년에 이에 대하여 "사과는 첫 단계이고, 신뢰를 회복하고 사안을 개선하겠다는 결의로 이어져야 합니다. 오늘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사과밖에 없습니다. 오직 생존자들에게 용서할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사과문을 발표하며 구체적인 보상방안을 제시했다. 당시 이 사건이 밝혀지며 위기에 몰렸던 클린턴 행정부는 진정성 있는 사과와 함께 그에 따른 보상안을 성심껏 마련하여 난국을 돌파했다.

비록 재심청구가 인용되고 무죄판결이 확정됐지만 재심사건을 진행했던 박준영 변호사는 사건을 담당했던 당사자들의 직접적인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지난해 10월경 재심으로 무죄가 확정된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의 1심 재판부 배석판사였던 박범계 의원이 지난 14일, 사건의 피해자들을 국회로 초대하여 사과의 뜻을 전했다. 박 의원은 이 자리에서 과거의 세월을 돌릴 수는 없지만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고개를 숙이며 향후 관련법안의 개선을 위하여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사과는 피해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방식이자 문제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변화에 대한 과정의 시작이다.

사과 같지 않은 사과문을 수없이 마주한다. 대개 미안한 마음 감출 수 없다는 듯이 시작되는 사과문은 변명을 거쳐 유감스러움으로 끝을 맺는다. 영화 `재심`은 단순한 한풀이가 아니다. 오히려 피해당사자가 책임 있는 이들에게 건네는 기회의 손길이다. 사과는 모든 것의 첫 단계이다. 시작부터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유감이다. 김우찬 법률사무소 다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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