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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프리즘] 관심이 국운을 결정한다

2017-02-14 기사
편집 2017-02-14 16:5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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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치에 관심 없다!'란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고된 일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서민들이야 먹고 살기 힘드니 세상 변화나 정치 따위에 신경 쓸 여력이 없을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관심이 없어 그리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짐짓 외면하려 한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일 거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대한민국에서는 그래선 안 된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정치를 잘한다면 몰라도 이는 매우 소극적이고 책임감 없는 생각이다. 국가구조의 기본 핵이 국민이니, 국민 개개인이 나라살림과 운용에 관심 없거나 일부러 회피한다면, 직무유기며 구성원의 자격을 스스로 저버리는 처사다. 당파싸움에 신물이 나고 끊임없는 부패에 무수히 실망했더라도 우리는 절대로 그냥 두고 보아선 안 된다. 격물치지(格物治知)며, 지즉위진간(知則爲眞看)이라 알아 깨우쳐야 참 진리를 터득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쉼없이 공부하여 감시하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의 정치판에 국회의원이 있는 정당이 넷이다. 총선 때와는 다른 정치판도가 돼버렸다. 이런 시국에 우리가 꼭 염두에 두고 지켜봐야 할 것들은 바로 그들의 정치적 신념과 국가관이다. 그렇지 않아도 머리 아픈 일이 많은 세상에, 그 나물에 그 밥의 특색 없는 각 당의 색깔을 정밀하게 분석해야 하니 스트레스다. 정치색깔에는 '진보'와 '보수'가 대표적이다. '보수'와 '진보'란 말은 17세기 후반에 프랑스혁명 이후의 국민의회에서 유래했다. 당시 그간의 왕정에 가깝던 온건 왕당파가 의회의 우측에, 급진 개혁의 공화파가 좌측에 앉았다. 개혁은 좌측, 온건은 우측, 날개를 편 듯 앉아 날개 익(翼)자를 써 좌익(左翼)우익(右翼)으로 부르게 됐다. 그 분류가 적절한지 의문이나 우리나라에도 좌익, 우익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보수는 '보수'라 쓰고 '부패' 로 읽으며, 진보는 '진보'라 쓰고 '종북'으로 읽히듯 왜곡 변질됐다. 이 말을 부정하자니 딱히 증거와 논리가 부족하다. 실제 우리의 짧은 민주적 정치역사에서 이 말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예를 아리게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과연 대한민국에 진정한 보수·진보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나라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데는 확고한 이념, 논리 그리고 분명한 색깔은 필요하다. 이런 정치적 이념, 논리, 색깔로 구분되는 정치계파의 존재이유는 국민의 행복을 추구하고 나라의 미래를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우격다짐이 아니라 합의와 협업이 대 전제란 말이다. 날개 큰 독수리는 양쪽 날개를 멋지게 펼쳐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며 창공을 난다. 이때 좌우의 날개, '좌익', '우익'이 협력하고 절묘한 조화로 날개 짓을 했을 때 우아하고 아름답게 날 수 있다. 이는 앞에서 보면 좌익이 뒤에서 보면 우익일 뿐, 제각각의 위치에서 본래의 책무와 의무로 기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양 날개 중 어느 한쪽이 다른 쪽에 비해 매우 길거나 짧으면 기형으로 불리며 비정상이다. 양측의 오묘한 조화가 정상이고 아름답다. 한마디로 좌익·우익은 그리 다른 정파가 아니며 싸움질하는 패거리가 아니란 거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의문투성이의 세상에서 자기주장만이 옳다는 생각은 충돌만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그들이 주장하는 정치적 노선, 이념, 정책이 바르고 국민을 위한 것인지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

올바른 정치적 소신과 이념적 무장 없는 떼거리계파는 끝없는 당파싸움을 불러왔고, 슬픈 정치역사를 되풀이했다. 이런 비통한 역사의 주범은 정치인들이나, 국민 개개인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민들의 지속적인 감시, 감찰, 관심이 필요하다. 우린 그간 단 한 표를 그들에게 주고 슬며시 잊어버리진 않았는가. 수많은 헛된 공약을 날려 엄청난 국고를 낭비하고 못된 짓을 해도 제때에 감지 못했지 않았는가. 우리에겐 그들을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고, 또한 질책하고 응징할 권리가 있다. 돼먹지 못한 정치인들을 정치현장에서 끌어내리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끊임없는 관심과 연구로 국민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각인시켜야 올바른 정치가 구현되며 국운이 결정된다. 강명식 푸른요양병원장·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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