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김인태가 힘껏 활줄을 당겨 화살을 날렸다. 무관들 사이에는 잘 알려진 김인태의 강궁이었으나 돌진해 오던 멧돼지는 화살이 목덜미에 꽂혔는데도 멈칫했을뿐이었다. 김인태는 이번에는 창을 던졌다. 끝이 세모꼴로 되어 있는 창이 가슴팍에 깊히 꽂혔는데도 멧돼지는 비틀거렸을뿐 쓰러지지 않았다. 멧돼지는 계속 돌진해왔다.

이번에는 창꾼이 앞으로 나가면서 멧돼지에게 돌진했다.

그 창꾼은 자기 몸으로 멧돼지에게 부딪치다시피 하면서 창을 멧돼지의 가슴팍에 찔러 넣었다. 멧돼지는 거기에는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 앞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그놈은 무릎을 꿇고 엎어진 자세로 계속 밀고들어왔다. 뒤따라오던 다른 멧돼지에게 밀려온 것 같았다.

그 싸움은 사냥꾼과 멧돼지가 거의 몸이 닿은 상태로 일단 끝났다. 앞머리에 섰던 멧돼지는 더 이상 자기의 힘으로 덤벼둘 수가 없었고 뒤따라오던 멧돼지도 쓰러진 동료에게 막혀 돌진할 수가 없게 되었다.

다른 창꾼 한 사람이 쓰러져 있는 멧돼지의 옆으로 빠져 나가 뒤따라 오던 멧돼지의 목덜미를 창으로 찔렀다. 그리고 동료가 던져준 창을 받아 계속 그 멧돼지를 찔러 눌렀다. 사냥꾼들이 고함을 질렀고 멧돼지가 비명을 질렀다. 터널 안이 피바다가 되었다.

사냥을 시작한 지 한 시간만에 그 사냥은 끝났다. 암수로 보여지는 멧돼지 두 마리가 죽었고 새끼로 보여지는 나머지 두 마리는 이렇다 할 저항을 못하고 죽었다.

멧돼지 사냥은 성공했다. 사냥꾼들에게는 피해가 없었다. 크고 작은 멧돼지 네 마리이면 굶주리고 있는 잡초마을사람들은 우선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멧돼지들이 먹고 있는 땅속 나무뿌리들도 식량이 될 것 같았다.

잡초마을은 그로써 춘곤의 위기를 모면했는데 그 소문이 퍼져나갔다. 김인태를 유배 보낸 관아에도 그 소문이 들어와 김인태의 정적들이 문제를 일으켰다. 그들은 나라를 뒤집을 반란을 음모했던 유배수를 그렇게 방임해서는 안된다고 항의를 하면서 김인태를 다시 처벌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중앙정부의 문신들의 강력한 뒷받침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김인태를 옹호하는 무관들도 있었다. 무관들은 김인태가 춘곤에 굶주리고 있는 잡초마을 사람들을 도운 것이 뭣이 그리 나쁜 짓이냐고 옹호했다.

문신과 무신들의 싸움이 다시 벌어져 한양에까지 파급되었다. 그 결과 세력이 더 강한 문신들이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여 김인태를 다시 처벌하기로 결의했으나 그 결의를 쉽게 집행하지는 못했다. 그 당시 나라 북방에서 오랑캐들의 침범이 빈번했기 때문이었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