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마을도 또한 그런 관례에 따라 유배수 김인태가 가끔 갇혀 있는 집에서 나와 마을 주위를 돌아다니는 것도 묵인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해의 겨울은 유난히 눈과 바람이 심해 마을 장로들은 1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추위라고 말하고 있었다.

김인태는 그렇게 갇혀 있는 집에서 나왔을 때는 마을사냥꾼들의 사냥을 도와주려고 했으나 그 해 겨울에는 멧돼지나 노루는 물론이고 토끼와 꿩 따위도 눈 속에 갇혀 나오지 않았다.

겨울이 그런 겨울이었으므로 봄이 심각한 문제였다. 촌곤을 어떻게 넘기느냐가 문제였다. 보리밭들은 온통 눈 속에 파묻혀 수확물이 나오지 않았다. 저장해 둔 농작물도 없는 마을이었기에 마을사람들은 굶주리고 있었다. 김인태의 집에 밥을 갖다 주는 이웃도 굶고 있는 것 같았으며 식구들의 얼굴이 누렇게 부어 있었다.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김인태가 촌장과 의논하여 사냥꾼들을 데리고 나섰다.

그러나 마을에는 눈이 1m나 쌓여 있었고 사람들은 지붕 없는 터널을 파서 통행을 하고 있었다.

굶주리고 있는 것은 사람들뿐만이 아니었다 .마을 저쪽에서 눈가루가 날려오고 있었다. 굶주린 멧돼지들도 지붕 없는 터널을 만들며 먹이를 구하고 있었다. 눈과 땅을 깊이 파들어 가면서 땅 속에 있는 나무뿌리들을 먹고 있었다.

김인태는 사냥꾼들과 함께 그 멧돼지들을 잡기로 했는데 위험했다. 멧돼지들은 깊이가 2m나 되는 지붕 없는 터널을 파들어가면서 먹이를 구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을 잡기 위해서는 사냥꾼들도 그 터널 안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그러면 그 좁고 깊은 터널 안에서 멧돼지들의 반격을 받게 된다. 멧돼지의 저돌(猪突)은 바위를 깨고 밀어붙인다는데 사냥꾼들은 활과 창으로 그 저돌을 막아야만 했다. 그렇지 못하면 멧돼지들에게 당하게 된다

김인태는 그 싸움에 앞장을 섰다.강궁으로 반격해오는 멧돼지에게 타격을 주고 그래도 저돌이 제지되지 않으면 창을 던져 더 큰 타격을 주어야만 한다. 그래도 저돌이 제지되지 않으면 사냥꾼들은 몸으로 그걸 막아야만 했다. 손으로 창을 들고 몸의 힘으로 저돌을 막아야만 했다. 그 싸움의 결과는 둘 중 하나였다. 멧돼지가 죽느냐 사람이 죽느냐.

김인태와 사냥꾼들은 그 모험을 감행했다.

사냥꾼들이 터널 안으로 들어온 것을 본 멧돼지들이 고함을 지르면서 발악했다. 암수와 새끼 두 마리였다. 앞머리에 선 수컷이 몸을 돌려 주둥이로 흙돌을 날리면서 돌진해왔다. 20m쯤 되는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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