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2월 24일 대전일보.
1997년 2월 24일 대전일보.
20년 전인 1997년 2월 한달 동안 한보사태 관련 기사들이 쏟아졌다. 한보철강 부도가 몰고 온 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가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국가 경제·정치·사회적 파장은 엄청났다. 부도 여파로 한보철강이 위치한 충남 당진의 피해 또한 막대했다. 한보부도 사태가 권력형 금융 부정과 특혜대출비리가 드러나면서 대형 금융사고로 기록될 정도다. 한보사태는 정치적 문제로도 번졌다. 검찰 수사결과 한보철강이 금융기관 대출금 중 2136억 원을 횡령하고, 정·관계 인사 및 전·현직 은행장 등에게 대출청탁과 뇌물을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사회적 파문이 컸던 만큼 수사에 한계성을 드러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보 관계자와 국회의원, 시중은행장 등이 구속됐다. 2월 26일자 대전일보에는 한보사건과 관련, 김영삼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김 대통령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한보사건과 노동법 파문, 차남 김현철씨 의혹 등 문제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를 했다. 한보배후의 실체로 지목돼 고소인 자격으로 검찰조사를 받은 김현철씨의 정치·도의적 책임에 대해서도 인정했다. 한보사건의 원인과 경위를 밝혀내고 관계자들의 정치적·행정적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임기 1년을 남긴 상황에서 새로운 국정운영 방향을 내놨다.

국제공항 기능을 갖춘 중부권 거점공항인 청주공항의 4월 개항 준비가 한창이었다. 당초 청주공항은 김포공항의 항공수요 분산을 위해 대형 국제공항으로 만들 계획이었지만 영종도공항 건설이 발표되면서 사업규모가 대폭 줄었다. 대전은 2002년 월드컵 축구경기 대전 유치를 위한 축구경기장 입지 선정 작업으로 분주했다. 대전시 인구가 130만 명을 넘으면서 정부3청사 입주 등 인구증가를 대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시의원 폭력사태로도 시끄러웠다. 대전시의회가 의장단 선거 후유증으로 파행을 겪던 가운데 임시회 불참요구를 거절한다는 이유로 한 의원이 집단폭행을 당한 것이다. 해당 의원은 반강제적으로 끌려가 폭언과 함께 집단구타를 당했다. 이로 인해 자질, 도덕성 등에 대한 지적과 함께 시민감시제 도입 등 제도적 장치 마련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또 신세계 프라이스클럽, 코렉스마트 등 할인점 진출이 이어졌다.

이외 2월 19일 중국의 최고실권자인 등소평이 93세 나이로 서거했다. 김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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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2월 26일 대전일보.
1997년 2월 26일 대전일보.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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