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성공한 이들을 일컫는다. 과거 고등고시, 자수성가는 소위 `개천에서 난 용`을 만드는 수단이었다. 어려운 삶 속에서 미래의 희망을 꿈꾸게 만드는 `사다리`였단 얘기다. 빈농의 아들, 상고 출신의 대통령을 만든 것도 `사다리`가 있기에 가능했다. 땀과 노력만 있다면 언제든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을 뚫을 수 있었다. 희망의 사다리는 급격한 성장을 이뤘던 1960년부터 1990년대까지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기회의 균등, 이를 바탕으로 한 `인생역전`의 기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구언(舊言)이다. 국가 경제가 수년간 지속된 저성장의 늪에 빠지며 `희망의 사다리`가 부러졌단 얘기도 나온다. 더 이상 `나은 내일`을 얘기하기 어렵게 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진다. 서민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은 불평등이다. 취업, 부동산, 병역 등 각 분야에서 소위 `금수저의 반칙`이 두드러지고 있다.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관심 △아빠의 무관심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웃지못할 말이 나도는 것이 단적인 증거다. 청탁금지법을 만들어 금수저의 반칙을 막자고 했지만, 이법이 오히려 희망을 빼앗아 갈 수 있다는 역설도 나온다. 상황이 이 정도니 미래 희망인 젊은이들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 꿀 기회가 없다고 말하는 것도 거짓은 아니다.

부러진 사다리, 더욱 높아진 유리천장 고착화의 이면을 보면 `세습의 일반화`가 뱀 마냥 똬리를 틀고 있다. 노력이 학력이 되는 사회에서 `재력=학력` 사회로 변하며, 사교육의 정도가 내일의 생활상을 결정하게 됐다. 저소득층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문화 및 정보 격차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된 역할을 못하며 가난의 대물림이라는 악순환을 불렀다. 교육의 정도가 미래를 결정하는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역할은 충분히 한다는 점으로 볼 때 문제가 심각하다. 육상경기에서 출발 시점도 다르고 운동장의 고르기와 신발에도 차이가 있다면, 승부는 이미 결정난 것과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사회 양극화를 고착·가속화 시키는 요인은 또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 경기에 각종 편법이 판을 치며, `불공정`의 일반화가 뿌리깊이 박혔다. 소위 금수저라 불리는 이들의 반칙 말이다. 비근한 예는 `비선실세 논란`의 주역인 최순실의 딸 정유라를 들 수 있다. 이화여대 입학부터 학사과정 전반에서 남과 다른 특혜를 받았다. 이대의 경우 일반인은 고교시절 잘 시간 줄이고 먹는 시간을 아껴가며 공부해야 갈 수 있는 학교다. 국내 여대 중 최고 지성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씨는 `누구의 딸`이란 간판을 걸고 입학해 학사모를 썼다.

제도의 급격한 변화도 `계층간 사다리`를 흔드는 요인이다. 사법고시 폐지로 인한 파장을 보면 극명하게 알 수 있다. 고시로 인한 양극화를 해소하고 법조계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시험을 폐지 했지만, 역으로 격차만 넓힐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가난해도 노력하면 들어 갈 수 있었던 법조계가, 돈 없이는 문조차 열지 못하는 곳으로 변한 것. 대안인 로스쿨이 과도한 수업료 등으로 `부자 전유물`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뒷받침한다. 이 때문에 대전에선 한 사법고시생이 선배가 될 뻔 했던 사시 출신 국회의원을 규탄하는 1인 집회를 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양극화 해소 방안의 역설은 이뿐 만이 아니다. `누구의 아들·딸` 간판을 떼기 위한 법이 오히려 간판을 보다 단단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청탁금지법 얘기다. 청탁금지법 시행 후 학연, 혈연, 지연이 없는 사람은 자수성가의 길이 끊겼다는 말이 고개를 든다. 과도하게 포괄적으로 제재를 가하며 사업상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길을 막은 것. 이 때문에 하청 등의 경우 기존 거래자가 우위를 점하며 신규 창업자 등의 시장진입 문턱은 오히려 높아졌다.

무릇 사회는 평등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과의 평등이 어렵다면, 기회 만큼이라도 그러해야 한다. 지금은 조기대선 정국이다. 이번 대선은 불공정의 일반화에 분노한 `촛불`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부러진 사다리를 비추는 촛불이 사다리를 고치고, 유리천장을 낮추는 역할을 하길 기대해 본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나기 힘들다", "왕후장상의 씨앗은 따로 있더라"라는 얘기가 들리지 않도록….

성희제 취재2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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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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