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입춘도 지났으니 진정한 정유년으로 들어섰다. 이번엔 외모가 뛰어났던 미남 임금들의 얘기다. 한가한 얘기라 할지 모르나 왕조시절 임금의 외모는 나라의 흥망이나 백성들의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

고구려 당(唐) 일본을 무대로 외교전을 펼치며 통일신라를 만든 주역 무열왕 김춘추(604-661)는 얼굴이 백옥 같고 늠름하며 언변이 뛰어났다. 당 태종이 그의 외모와 풍채에 감탄하며 후하게 대우했다하며 일본서기에서도 `용모가 아름답고 담소를 잘 한다.`고 하였으니 가히 당대 국제공인 미남이자 잘 생긴 외모의 덕을 톡톡히 본 성공한 임금이라 하겠다.

조선시대로 내려오자. 세종의 장남 문종(文宗)은 체격이 크고 수염이 풍성하여 관운장 같은 풍모의 미남이었다 하며, 어렸을 때부터 영특함으로 소문난 천재였으며 과학자이자 군사학에도 밝았다. 재위 2년 스물아홉에 죽었으니 참으로 아까운 인물이었다. 그러면 연산군은 어땠을까? 그는 외모가 계집아이 같고 야리야리했으며, 흰 얼굴에 몸과 허리가 가늘고 수염이 적었다고 하니 어쩌면 오늘날의 꽃미남에 가깝다. 인조의 아들 효종(孝宗)은 잘 생긴 얼굴에다 체구가 크고 무인기질을 타고 난 군주였다. 거울을 볼 때마다 자기 얼굴에 스스로 만족하여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침을 맞던 중 어의의 실수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니 마흔하나 한창 나이였다. 그의 때 이른 죽음은 호란 이후 나라의 기상을 바꾸어 보자는 분위기를 급속히 가라앉혔고 또한 치열한 예송논쟁을 야기, 이후의 정국을 끝없는 당쟁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고 말았다.

조선조 임금들의 외모를 얘기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순조의 손자이자 그의 대를 이은 헌종(憲宗) 이환(李奐).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수렁에서 조선왕실을 건져낼 기대주였던 미남 효명세자의 아들이다. 작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탤런트 박보검이 맡은 역의 모델이 바로 이 효명세자다. 대리청정을 하며 개혁의 깃발을 올리던 그는 스물둘의 나이로 요절하고 이어 순조의 사망 후 헌종이 재위에 오르니 나이 겨우 여덟 살. 조선조 최연소 왕이자 특히 조선조 최고의 미남임금이었다. 아름다운 외모에 좋은 목소리를 지녔다고 실록은 전하며, 요즘 인터넷에서 역사적 기록을 토대로 합성시켜 만들었다는 그의 모습을 보면 짙은 눈썹과 오똑한 코에 깊은 눈매, 그 준수함은 지금의 아이돌 스타를 훌쩍 뛰어넘을 정도이다. 왕이 워낙 미남이다 보니 젊은 궁녀들의 유혹이 끊이지 않았고 어지간한 궁녀들은 거의가 다 왕의 승은을 입었다. 또한 3년에 걸친 기다림과 고집 끝에 쟁취한 후궁 경빈 김씨와의 달콤한 로맨스와 그녀를 위해 지은 명품 건물 창덕궁내 낙선재(樂善齋)를 후대에 남겼다. 허나 삼정의 문란과 학정 아래 백성들은 굶주리고 있었다. 헌종은 스물 셋의 나이에 피를 토하며 죽고 만다. 너무 잦은 성생활도 그 원인이었고 그 많던 여인들에게 자식 하나 없었다. 안동 김씨들이 선택한 다음 왕은 강화에서 나무꾼으로 지내던 철종(哲宗). 세도정치는 더더욱 기승을 부리고 조선은 망국의 길로 가고 있었다.

`창천(蒼天)은 홍안(紅顔)을 시기하여 괴롭히는 버릇이 있다네.`

베트남 문학의 최고봉 `쭈엔 끼에우(傳翹)` 서막에 나오는 말이다. 정말 하늘은 잘 생긴 얼굴을 시기하는 것일까.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유창영 대전보건대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