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입자

2012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LHC(Large Hardron Collider, 대형하트론충돌기)를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낸 힉스보손을 설명할 때 빼놓지 않고 따라다니는 일화가 있다. 힉스의 별명인 `신의 입자`가 어떻게 붙여졌는가 하는 것인데, 그 이야기는 바로 이 책에 담겨있다.

미국의 실험물리학자 리언 레더먼은 과학저널리스트 딕 테레시와 함께 입자물리학의 역사와 힉스 입자에 대한 책을 쓰면서 `빌어먹을 입자`(Goddamn Particle)라는 표현을 생각했다. 하지만 편집자가 언어순화를 위해 `damn`을 빼면서 `신의 입자`(God Particle)로 알려지게 됐다.

물리학자들의 최대 과제는 우주의 모든 섭리를 담은 간략한 방정식을 찾는 것이다. 뉴턴 시대의 물리학자에게는 그것이 `F=ma`(가속도의 법칙)였고, 페러데이와 맥스웰을 거치면서 맥스웰 방정식도 그중 하나가 됐다. 다시 세월이 흐르면서 다양한 입자들이 발견되고 우주의 모든 현상을 네 종류의 힘(중력, 강력, 약력, 전기자력)과 십여 개의 입자로 설명하는 표준모형이 입자물리학의 정설로 자리 잡고 있다. 여섯 종의 쿼크와 여선 종의 렙톤으로 이뤄진 표준 모형이 미완의 모습을 벗고 모순을 없애 완벽해지려면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 입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표준모형의 구원투수 힉스 입자는 한동안 찬밥 신세였다. 자신의 이름을 빌려 준 피터 힉스 조차 1990년대에는 다른 연구를 하고 있었다. 힉스 입자를 싫어하는 물리학자들의 공통점은 "실험적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실험물리학자인 레더먼은 그들에게 기꺼이 도전장을 던진다.

이 책을 쓸 당시 리언 레더먼은 힉스를 발견할 초전도초충돌기(SSC)를 건설할 계획에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 책의 곳곳에서 SSC에 대한 자부심과 힉스 입자 발견에 대한 기대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110억 달러의 막대한 예산이 드는 SSC 프로젝트는 이 책이 출간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취소되는 비극을 맞이한다.

세계의 진리를 찾는 물리학자들의 노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미국 페르미 연구소의 SSC 대신 CERN의 LHC가 건설돼 2008년 첫 빔을 쏘아 올렸고, 마침내 2012년 신의 입자 힉스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2013년 힉스 입자의 존재를 예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피터 힉스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다. 1993년 이 책은 출간과 동시에 비극으로 끝나게 됐지만, 2017년의 우리에게 이 책은 놀라운 예언서로 다시 읽히게 된다.

물리학을 다룬 대부분의 책은 이론물리학자가 쓴 것이고, 대부분 홍보 자료나 머리말을 통해 책이 쉽고 재미있게 쓰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책상 위에서 우아하게 서류작업을 하거나 대다수의 물리학 책을 쓰고 있는 이론물리학자가 아닌, 시멘트 바닥에서 새우잠을 자고 100여 명이 공동 작업을 하는 것이 일상인 실험물리학자이다. 그는 확률의 합이 100%가 되지 않아도 완벽할 필요가 없는 실험물리학자이기에 일반인인 독자들의 눈높이에 비교적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자부한다. 737쪽의 두꺼운 이 책의 모든 페이지가 유쾌하다고 할 수 없지만, 수많은 이론물리학자들의 완고한 메시지가 담긴 책보다는 훨씬 유쾌하고 너그러우며 과학과 수학의 무지에 관대한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독자들이 신의 입자 힉스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지길 기대해본다. 이호창 기자

리언 레더먼, 딕 테리시 지음/ 박병철 옮김/ 휴머니스트/ 736쪽/ 3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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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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