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개발된 의약품 중 사람이나 동물의 생명을 가장 많이 지켜 준 약은 백신이다.

백신은 병원균을 이용해 체내에 항체나 면역세포를 생성시켜 질병을 예방한다. 장티푸스 파상풍 콜레라 등의 공포에서 해방된 것만 봐도 그렇다. 앞으로 인간과 동물 질병의 반 이상을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소, 돼지, 염소 등이 걸리는 구제역의 공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정부는 지난 2010년 소, 돼지 348만 마리가 살처분되는 최악의 구제역을 겪은 뒤 백신 접종을 의무화했다.

축종별로 다르지만 소는 생후 3개월에 한번 접종한 뒤 보름 후 한차례 더 백신을 놔야 한다. 이후에는 1년에 2차례씩 반복 접종하게 돼 있다.

정부는 지난해 전국의 백신 항체 형성률을 소 97.5%, 돼지 75.7%라고 밝혔다. 이 수치 대로라면 소의 경우 구제역이 발생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러나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충북 보은군 젖소 주변 농가 20여곳 대부분은 항체 미달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농가의 `도덕적 해이`를 원인으로 지목했지만, 농가에서는 백신 접종을 제대로 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등 진실게임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해당 백신이 효과가 없는 `물백신`인지, 냉장 보관을 제대로 안하는 등 접종 과정에 문제가 있었는 지 등 정확한 원인은 정부의 역학 조사 결과가 나와야 할 수 있다.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는 상황에서 농가 과실로 몰고가는 것은 농장주들을 두번 죽이는 일이다.

현재로서는 대다수 농가에서 접종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을 뿐더러 백신을 제대로 접종하지 않으면 해당 농가는 과태료를 물거나 사안에 따라 살처분 보상금이 깎이는 불이익을 받게 된다. 농가로서도 노골적인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기 쉽지 않은 구조다. 책임 떠넘기기 할 시간에 물 백신은 아닌지, 백신 접종의 허점은 무엇인지를 따져보는 게 더 시급하다. 지난 2014-2015년 구제역 파동당시 백신 효능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 농식품부와 검역본부 관계자 32명이 징계 처분을 받았던 것이 지금으로부터 2년전 일이다. 또다시 고개를 숙이는 일이 반복돼서야 되겠는가.

원세연 지방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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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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