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동설한의 추위가 한층 더 매서울수록 봄의 시작을 알리는 매화의 자태와 향기는 더욱 화사하다. 세상이 혼돈스러울수록 조선의 문장가 신흠(申欽)이 쓴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매화는 평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한시 구절이 가슴에 사무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도 등장하는 매화는 기원전에 이미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건너와 일본으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유구한 세월 동안 그 모진 생명력을 이어온 매화의 오랜 군락지를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반면 우리나라 남해안과 비슷한 위도의 일본 간사이(關西)지역 오사카(大阪)·교토(京都) 일대 옛 사찰이나 정원에는 2-3월이면 수령 수백 년 이상의 매화나무들이 화사한 자태를 드러낸다. 우리보다도 매화를 더욱 귀히 여기며 각별한 애정으로 대해온 일본에서는 더욱 고혹적인 매화의 향취를 만끽할 수 있다.

오사카 일대 매화 탐사명소로는 오사카죠 코엔(大阪城公園)의 매화나무 숲이 잘 알려져 있다. 오사카 시내 중앙에 들어선 오사카죠 천수각(天守閣)의 동쪽으로 펼쳐지는 매화 숲(면적 1.7㏊)에는 풍후매·백가하매·녹악매 등 100여 품종 1270여 그루의 매화가 2월 하순부터 3월 상순 무렵 절정을 이룬다.

오사카 도심에서 전철을 이용해 1시간 안에 갈 수 있는 천년 고도 교토의 매화 탐사명소로는 키타노텐만구(北野天滿宮)가 스케일 면에서 단연 으뜸이다. 일본 헤이안 왕조시대 대표 문필가 스가와라 미치자네(菅原道眞)와 인연이 깊은 이곳 2만여 평의 경내에는 50여 품종 1500여 그루의 매화나무가 있다. 매년 2월 넷째 주 토요일에 매화축제가 열리는 이곳은 2월 중순부터 3월 하순까지 매화 탐사의 절정을 이룬다. 하지만 그중 동지매·조수매·한홍매 등은 그보다 한 달 이상 이른 1월에 만개해 매향을 한껏 뿜어낸다.

교토 일대 매화명소 중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아도 낭만과 정취 측면에서는 단연 압권인 곳은 교토 외곽 남쪽, 게이한 전철 쥬소지마(中書島)역 인근에 위치한 죠난구(城南宮) 매화정원이다. 2월 하순부터 3월 상순 무렵 이곳 매화정원을 천천히 둘러보다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파랑새가 지저귀는 별천지 속을 거니는 것만 같다. 신전 위 나지막한 야산에 자리 잡은 매화정원 신엔(神苑)에 빼곡하게 들어서 오랜 세월에 걸쳐 뿌리를 내린 150여 그루의 홍백 능수매화 `후시미`가 그 탐스럽고 화사한 자태를 흐드러지게 뽐내면 상춘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교토 일대의 숨겨진 매화 명소 야마다이케 코엔(山田池公園) 역시 절정을 이루는 2월 상순부터 3월 중순까지 마치 무릉도원과도 같다. 주변의 울창한 산과 풍요로운 자연을 그대로 살린 자연친화적 이곳 공원의 언덕바지에는 약 300그루의 매화나무가 들어서 있다. 매화 시즌 늦은 오후 이곳을 찾아 순백·적·연분홍의 화려한 색감을 유감없이 뽐내며 앙상블을 이루는 매화의 향연을 즐기다 보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교토의 또 다른 매화 탐사명소로 토쿠가와 이에야스와 연관이 깊은 모모야마시대 문화예술양식의 진수를 간직한 모토리큐 니조죠(元離宮 二條城)도 빼놓을 수 없다. 이곳에 에도시대 니노마루 정원과 메이지시대 혼마루 정원의 능수매화·홍매·백매 등은 130그루에 불과하지만 2월 하순부터 3월 중순 경 절정을 이뤄 더욱 매혹적인 일당백의 자태를 뽐낸다.

2-3월에 오사카·교토 일대로 자유여행을 떠난다면 사찰과 공원의 매화 명소 위주로 효과적인 교통수단인 게이한전철(京阪電鐵)을 이용해 하루에 명소 세 곳 정도 둘러보는 스케줄로 움직이면 좋다. 신수근 자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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