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 유배수에게는 칼이나 창 등 무기는 주지 않기로 되어 있었으나 집주인인 포수가 남겨 놓은 물건이기 때문에 촌장은 그대로 둔 것 같았다.

유배수 김인태(金仁泰)는 일찍이 무과에 합격하여 함경도 군영에서 근무하면서 국경을 침범하는 외적들을 물리치고 있으나 이조의 병폐인 문관과 무관들의 싸움에 말려들어 유배형을 받았다. 문관들이 김인태가 대량의 화약을 숨겨 놓고 반란을 음모하고 있다고 모함했던 것이다.

촌장이 물러나자 젊은 여인이 저녁밥상을 들고 왔다. 감자가 섞인 조밥이었고 된장과 김치가 놓여 있었다. 김치는 제대로 양념이 안된 것이었으나 된장에는 향긋한 나물 냄새가 나고 있었다.

여인은 촌장이 유형수를 접대하도록 지병한 이웃 집 딸이었는데 스무살이 좀 넘은 것 같았다.

그로써 김인태의 유배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는 양반이라고 해서 앉아서 아랫사람들의 시중을 받는 게으른 위인이 아니었다.

그는 여인이 갖다준 요강이나 세숫대야를 받지 않았다. 그는 마당 한구석에 거적이 덮여 있는 뒷간을 썼고 세수는 집 가까이에 있는 우물에서 했다.

그날 밤 늑대들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마을 앞에 있는 바위산에 늑대들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에는 서너 마리의 늑대들이 바위산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마을이 위험했으나 마을을 지키는 개들도 없었다. 전에 몇 마리가 있었으나 모두 늑대들의 밥이 되었다는 말이었다.

김인태는 죽은 포수가 남겨 둔 녹슨 칼을 끄집어내 돌에 갈았다. 갖고 있는 생활도구란 그것뿐이었으므로 그는 그 칼을 소중하게 여겼다.

그는 마을 앞 잡목림에 들어가서 그 칼로 나뭇가지들과 대나무들을 잘라 나무 창과 대나무 창 그리고 활과 화살 등도 만들었다. 그것들은 자기의 몸을 지키는 데 쓰일뿐만 아니라 마을을 지키는 데도 쓰여질 것이었다.

본디 유배수는 탱자나무로 담을 치고 있는 거처 밖으로는 나가지못하도록 되어있었으나 촌장은 그가 손수 만든 대나무 창을 들고 거처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을 모른척했다. 유배수는 첩첩산중 외딴 마을에 있는 그 거처에서 도망갈 수도 없었고 또 도망가려고 하지도 않았다.

김인태는 잡초림에서 나뭇가지와 마른 낙엽들을 긁어모아 땔감도 해왔다.

그는 그런 땔감을 부엌에 던져 놓고 가끔 사냥도 했다. 손수 만든 활이나 창으로 토끼나 꿩 같은 것을 잡아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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