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사태로 나라가 너무나 혼란스럽다. 세상을 살다 보면 비(非)는 이치를 이길 수 없고, 이치는 법을 이길 수 없으며, 법은 권력을 이길 수 없고, 권력은 천(민심)을 이길 수 없다는 한비자의 비리법권천(非理法權天) 법칙이 엄격히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정농단 사태를 가지고 시끄럽게 법적인 공방을 벌일 일도 아니다. 그 행위가 최상위에 있는 민심에 반한 일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면 될 일이다. 다만 이러한 사태가 일어나게 된 원인을 찾아보고,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나 내용에는 문제가 없었는지 고민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며, 교육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변화와 혁신을 기해야 할 것이다.

교육이 변해야 한다는 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교육에서 변하는 것은 그 방법이나 형태일 뿐이다. 교육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다양한 학습매체나 학습방법의 변화는 교육의 본질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한 수단이나 방법일 뿐이지 교육의 본질을 변하게 하려는 것은 아니다.

교육의 본질은 무엇일까? 학력이 우수한 학생일까? 어떤 측면에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그런 것만은 아니다. 교육의 본질이란 사람이 사람답게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즉 사람에게서 사람 냄새가 나도록 하는 것이지 동물 냄새가 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권력이 있다고 이치에 맞지 않는 생활을 하고, 법을 무시하고, 민심을 거스르는 생활은 사람보다는 동물에 가깝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많은 학부모들은 자녀의 진로 문제로 걱정하고 있다. 자녀의 타고난 재능보다는 사회에서 선호하는 의사, 판사, 교수와 같은 직업을 원하고 있다. 어느 화가가 알을 보고 새를 그리는 그림이 있다. 그 화가는 알에서 나올 수 있는 새, 즉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학부모들은 알에서 나올 수 없는 호랑이나 사자를 그리려고 하고 있다. 타고난 재능을 키워줘야 자녀들이 행복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말을 물가에 끌고 갈 수 있어도 물을 억지로 먹일 수 없다는 말이 있듯 자녀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이치가 아닐까 싶다.

이치에 맞는 생활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가장 기본이 되는 밑바탕이다. 기본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지게 돼 있다. 그래서 이치에 맞는 생활을 해야 한다. 이치에 맞게 생활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대학에 가거나, 직장을 선택하거나, 이권을 챙기는 것은 모두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이러한 이치에 맞지 않는 비리를 다스리기 위해 법이 존재한다. `악법도 법이다`는 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위의 말을 한 적이 없음에도 그의 말로 오해되고 있는 이유는 그가 부당한 판결을 받았음에도 독배를 마시고 죽었기 때문이다.

부당한 법의 판결이지만 순응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서, 준법의 모범처럼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친구 `크리톤`에게 분명히 자신을 사형으로 내몬 다수의 생각은 우매하고 그릇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우매한 군중들이 상식으로 여기는, 감옥에서 간수에게 뇌물을 주고 탈출해 삶을 영위하는 그 방식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당당히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그는 법의 판결을 순응한 것이 아니라, 삶의 고결한 원칙을 죽음이 두려워서 깨뜨리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오늘의 국정농단 사태도 이치에 맞지 않고, 법을 무시하고, 민심에 반하는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른 결과가 아닌가 싶다. 이제부터라도 교육의 본질에 접근하자. 1등 우선주의에서 벗어나 서로가 상생하는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자. 사람 냄새 나는 따뜻한 세상은 나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보다는 이웃 모두에게 행복을 만들어 주는 사람을 요구하고 있다.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다면 내가 불행하고 싶어도 불행할 수 있을까? 비리법권천(非理法權天)의 의미가 가슴 깊이 와 닿는 시기인 것 같다. 이은학 대전송촌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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