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찮게 `사코와 반제티의 수난`이라는 그림을 보게 됐다. 이탈리아에 잠시 살았던지라 이름이 낯설지 않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아보게 됐고 나는 점점 이 사건 속으로 들어가게 됐다. 그림은 아주 단순했다. 세 명의 인물이 애도하는 듯 흰 꽃을 들고 그림 중앙에 서 있었고 그들 앞에는 관 두 개가 있었으며 그 속에 죽은 듯 보이는 두 사람이 누워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장례식장이 아닌 어느 관공서(배경에 높은 계단과 큰 기둥이 보임) 앞 잔디 마당 같아 보이는 배경과 중앙 세 명의 인물들의 표정과 시선 그리고 옷차림이었다. 그들은 죽은이를 애도하는 듯, 손에 흰 꽃을 들고 있기는 했지만 표정은 매섭기도 무표정하기도 했다. 시선은 무언가를 노려보는 듯했으며 세 명 중 중앙의 인물은 대학 총장의 의복을 입고 있었다. 무언가 좀 어색하다고 느꼈었지만 이 그림이 말하고 있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1920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평화의 시대가 온 듯한 미국의 매사추세츠주에서 제화공장에 무장강도 사건이 발생해 두 명이 숨지고 직원들의 급료를 강탈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은 여러 증언을 토대로 범인이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섣부른 결론을 내린다. 이후 용의자로 구두수선공 사코와 생선장수인 반제티를 체포한다. 그들은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고 주장하며 항소했지만 재판은 점점 불리하게 돌아가게 된다. 그러던 중 1925년 한 증인이 자신과 자신의 갱단이 범인이었다고 고백하지만 판사는 재심을 불허한다. 이 사건은 이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고 버트란트 러셀, 아인슈타인, 마리 퀴리 등 세계의 지성인들이 구명운동에 나서지만 1927년 사코와 반제티는 전기의자에서 끝내 생을 마감하고 만다. 이 사건은 사형이 집행된 지 50년 만에야 매사추세츠 주지사에 의해 무죄로 선포된다.

사코와 반제티는 어떤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었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이 두 이주노동자는 정부가 가난한 노동자한테 마음을 기울이는 않는다고 느껴서, 그러니 바보 같은 정부는 있으나 마나 하다는 `무정부주의`를 생각했고 `징집기피`를 행해서 죽게 된 것이다. 정부 권력자들의 이념 다툼과 권력 쟁탈에 왜 우리가 동원되고 희생되어야 하는지 스스로 반문하던 그들은 서민과 노동자들의 편에 서다가 결국 반공주의를 표방하는 당시 미국 정치와 사회에 희생양으로 다뤄지고 만 것이다.

사코는 자신의 아들에게 이렇게 마지막 편지를 남긴다. "울지 말거라, 단테야. 항상 기억해라. 행복한 유희 속에서 젊음을 보내기보다 박해당하고 희생하는 이들을 도와라. 네 용감한 마음과 선량함이 그들에게 기쁨을 주리라 믿는다. 인생에서 너는 더 많은 사랑을 발견할 것이고, 사랑받게 될 거야."

반제티는 `뉴욕 월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마지막 말을 남긴다. "이런 일이 없었다면 나는 길거리에서 무시당하면서 내 삶을 살다 마쳤을 것이다. 내세울 것 없고 이름 없는 실패자로 죽었을 것이다. 평생 살아오는 동안 우리는 우리가 지금 죽어 가면서 하고 있는 일을 하리라고 기대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관용을 위해, 정의를 위해,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날을 위해 싸우고 있다. 마지막 순간은 우리 것이다. 그 고통은 우리의 승리이다."

1920년대의 미국과 지금의 한국이 너무나도 닮아 보이는 것은 나의 착각일까. 권력과 재력 앞에 법도 무용지물이 된 것 같은 요즘, 무정부주의를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봤으리라 생각된다. 칡 줄거리 마냥 하루가 갈수록 계속해서 새롭게 나오는 수많은 국가의 비리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잘못한 것을 인정하기는커녕 사과 한마디 않는 나라,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나라, 도대체 국가가 왜 존재하는가 하는 터무니 없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이름 없는 무명의 사코와 반제티가 아직 이 나라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그들이 가난한 노동자들과 평화를 갈망하는 이들을 대변해 자신을 희생하고 있기에 이 땅은 아직 희망적이다. 그들의 희생이 50년 후에서야 인정받는다 할지라도 그 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으리라. 아, 사람을 위해 사람인 나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야 말로 얼마나 값진 일인가.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 40) 이진욱 천주교 대전교구 이주사회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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