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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프리즘] 소통불능의 시대

2017-02-07 기사
편집 2017-02-07 16: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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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자아가 무수한 타자들과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유용한 수단이다. 같은 언어권에서 살아간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사회의 가치관과 문화를 공유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역설적으로 다른 사회를 이해하려면 그 문화권에서 사용하고 있는 언어를 학습해야 한다. 말과 글로 표현하는 언어는 소통의 수단인 동시에 각자의 삶의 양태를 결정하는 요인인 셈이다.

우리 사는 세상에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있다. 글은 잘 쓰는데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 있고, 말은 청산유수인데 자신의 말을 글로는 정작 쓰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 대중들은 자신의 견해를 말로 하기보다 글로 써내기가 훨씬 더 어렵다. 당연한 노릇일지 모른다. 태어나 자라면서 말을 먼저 배웠고 일상에서도 글보다 말의 사용 빈도가 훨씬 높기 때문이다.

우리가 맺고 있는 모든 사회적인 관계는 언어로 형성되고 유지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언어가 있다. 흔히 말하는 소통불능이란 말이 통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매스미디어가 지배하는 현대사회는 단 한 번의 클릭으로 모르는 것을 찾아낼 수 있는 정보 천국의 세상이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는 더욱 멀어졌고 진정한 교류는 사라져간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의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어찌 행복할 수가 있겠는가. 소통불능의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는 우리는 다들 외롭고 힘겨울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새해 벽두부터 대통령이 되려는 이들이 쏟아내는 말들로 사회가 들끓고 있다. 그들의 말 한마디에 미디어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대중은 그들의 말을 전해주는 언론에 눈길을 준다. 그들은 머릿속에 들어 있는 언어들로 대중을 설득하려 하고 대중은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을 판단한다. 하지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고, 우리는 그들의 세 치 혀가 만들어내는 말들에 바보처럼 참 무수히도 속아 왔다.

지지율이 어떠하든, 대통령 한 번 해보겠다고 나서는 그들의 공통점은 말 하나는 참 잘한다는 감탄이다. 그들의 가슴 속에 들어가 볼 수 없으니 속내는 알 길이 없다. 내가 대통령이 되어야만 당신들이 행복해진다는 나름의 당위성을 저토록 열심히 목 아프게 외쳐대지만 어느 때인가부터 그들의 말은 하나같이 공허하게만 느껴진다.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은 전략적이고 계산적인 그들의 말은 이제 듣기 거북하다 못해 지겹다.

지난 한 동안 국회 청문회 중계를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는 걸 모른다고 하는 것도 거짓말이고 모르는 걸 안다고 하는 것도 거짓말이다. 사실과 진실은 분명 존재하는데 사실과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 이건 코미디다. 청문회에 나온 참고인들과 증인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그들이 참 안 됐다는 동정심마저 일었다. 돈과 권력에 기대어 무엇보다 소중한 자신을 잃어버린 이들이 바로 그들이 아닌가. 대중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는 이들인데 왜 저렇게 살았을까 하는 의문이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그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잘못된 건가 하는 자괴감에서 내내 자유롭지 못했다.

이게 가슴이 아닌 머리로 살아가는 지식인들이 주도하는 사회의 불행한 실상이다. 화해와 용서는 없다. 오로지 대결과 승패에만 관심이 있는 그들의 말이 곧 한 나라와 사회의 나아갈 길을 결정한다는 게 우습다. 저들의 논리대로라면 수많은 패배자들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고, 그러면 어떤 모습의 현실이 우리를 기다릴까. 나아질 수도 있겠고 더 불행해질 수도 있겠다. 그들의 말들은 하나같이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지만 말로 나아진 세상에서 살아본 적이 없던 나는 그들에게서 희망의 불씨를 좀처럼 발견하지 못하겠다. 입보다 귀가 더 크고, 머리보다 가슴이 더 뜨거운 그런 사람은 진정 없을까.

소통불능의 불행한 시대에 겨울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의 상형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건 눈이 아니라 마음이다. 나무들은 계절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정직하게 살아내는 현자의 모습이다. 온몸으로, 말이 아닌 침묵의 진실을 말한다. 이태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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