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새해가 되고 설날이 지났다. 설날만 지나면 성큼 봄에 한 발자국 다가선 양 햇빛이 달라진다. 새의 울음소리마저 한결 윤기가 흐르고 밝아진다. 올해도 그렇게 봄은 오겠지. 하지만 우리들 삶은 여전히 우중충하고 헌 누더기처럼 누추할 뿐이다. 못 살겠다, 짜증난다는 말이 요즘 사람들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다.

새로운 일은 없고 신나는 일도 없다. 그 어디에서도 희망의 싹은 보이지 않는다. 암울한 회색빛 우울의 일색.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마음의 빛깔이다. 나는 결코 여기서 경제문제를 이야기하고 싶고 적극적으로 정치 얘기를 하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그저 우리들 소시민들 사는 형편이 그렇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텔레비전을 켜거나 신문을 펼치면 온통 시끌벅적 싸우는 이야기들뿐이다. 무엇으로 싸우는가? 정치 얘기로 싸우고 서로 편을 갈라서 네 편이 옳다 내 편이 옳다 싸우고 있다. 오직 그들만이 지금은 신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편을 짠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아무런 편에도 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오히려 대다수 선한 국민들이다.

그냥 소시민이라고 해도 좋겠다. 대부분의 이런 사람들은 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다만 하루하루 편한 마음으로 살면 족한 사람들이고 지극히 상식적 판단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이다. 정작 이들에겐 보수다 진보다 그런 특별한 이념의식이 없고 그런 걸 잘 알지도 못한다. 단순하기까지 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오늘의 정치는 매우 화나게 만들고 있다. 삼류정치라는 말이 있었지만 이제는 오류 정치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실정이다. 정치인이 나쁘다는 것은 중학교 아이들도 다 아는 사실.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인데 법을 제일로 잘 안 지키고 악용하고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그들이라는 걸 아이들도 잘 알고 있다. 오죽해야 국회를 없애버려야 한다는 말이 다 나왔겠는가!

정말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아이들한테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들한테 미안한 줄 알아야 한다. 좌파다 우파다, 진보다 보수다,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작 당신들이 국민들을 위해 함께 울어주고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줄 부드러운 손이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애국심까지는 가지 않아도 좋겠다.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장갑 가운데에서 그 한 쪽을 누군가 손 시린 사람을 위해 벗어줄 용기가 있는가만 묻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세상살이 가운데 으뜸인 일이고 선두의 일이다. 정치가 잘된 나라가 선진한 나라이고 그것이 잘 안되면 어두운 나라다. 아무리 없애버려야 한다고 말해도 국회는 있어야 하고 아무리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라 해도 정부는 있어야 한다. 어차피 정치는 여러 개의 객차를 끌고 가는 기차의 기관실 같은 것이다. 정말로 세상이 달라지려면 정치가 달라져야 한다. 아니 정치인이 달라져야 한다.

이제는 보복 정치, 원한 정치는 그만 했으면 좋겠다. 그들의 정치는 오로지 저들만의 정치요 저들만의 한풀이 정치 같은 것이다. 그 바람에 속고 녹아나고 병들고 피해 보는 것은 국민이요 국가다. 이 나라가 왜 저들만의 나라인가? 정말 이 나라가 지금 입을 모아 떠들고 소리 지르고 패를 갈라 싸움질하고 욕하고 야단발광을 치는 저들만의 것인가! 부디 숨죽여 바라보고 있는 대다수 국민들이 있다는 걸 잊지 말라.

이 대목에서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일꾼을 꿈꾼다. 그는 우리의 형제요 우리의 아들이요 우리의 대표 선수다. 그는 아무한테도 빚을 진 사람이 아니고 아무한테도 원한을 사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충분히 젊은 사람. 차라리 푸른 말과 같다. 광활한 들판을 뛰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 숨결은 드높지만 거칠지 않고 건강하다. 눈빛은 날카롭지만 겸손함을 함께 지녔다. 손길은 억세지만 부드러움을 잃지 않았다. 가슴은 탄탄하지만 따스함을 안으로 숨겼다.

제발 새 시대엔 이런 일꾼이 나와서 우리를 이끌어 가주었으면 좋겠다. 이런 일꾼이 나와서 우리들의 지친 손을 잡고 함께 가자고 아직도 희망이 남았다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어차피 우리는 정치가가 아니고 정치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다만 바라는 것은 우리를 덜 속상하게 해주고 우리의 일상을 좀 더 편안하게 조용하게 만들어 달라는 것뿐이다. 그것이 우리의 새로운 대표선수, 새로운 시대의 푸른 말과 같은 사람에게 전하는 말이다. 자 이제 바야흐로 봄이다. 봄의 들판이 그대를 기다린다. 우리들의 푸른 말, 뛰어가라! 나태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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